묵상노트

780주일 | 천국로(天國路): 전적인 헌신이다(마8.14-22).

780주일 | 8.14-22

천국로(天國路): 전적인 헌신이다!

 

    A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5.1)

       X 산상수훈(5-7)

    A'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8.1)

       B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1b)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주여(2- )

          한 백부장이 나아와 주여(5- )

          사람들이 예수께 오거늘(16- )

          한 서기관이 나아와 선생님이여(19- )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주여(21- )

    B' 제자들이 따랐더니(23)

 

산상수훈(X)이 마쳐지고,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셨다(A’). 흥미로운 것은 산상수훈의 결론부에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 문일 것이라는, 그래서 그 길을 찾는 이가 적을 것이라 했다(7.13-14). 그런데 지금 8장의 분위기는 그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주님을 따르겠다며 헌신을 고백한다(8.1). 놀랍게도 찾는 자가 많다.

 

헌신은 믿음의 결단이다.

 

산상수훈 말씀과 치유 사역을 통해 구약(17, 53.4 참조)이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주님을 따르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면 이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헌신이다.

 

[1] 19-20

그렇다면 지금 한 서기관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 족하다는 것을 그는 주를 따르겠다는 것으로 청원을 하고 있다(19):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19)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시작된 천국으로 가는 좁은 길에는 먼저 편안한 장래의 보장, 장밋빛 환상을 버리라!(20) 하신다. 그러니까 좀 더 쉬운 말로 하면 고생문이 환하다. 그러니 각오했느냐!”는 뜻이다. 기독교의 헌신은 그 결과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영광과 승리의 유형만은 아니다. 때로 옥에 갇히고, 오해를 받고, 인간 관계에서 오는 낙심과 좌절, 실패, 고통, 절망 등의 것들이 오히려 따르는 자의 길목을 가로막고 서 있다.

 

[2] 21-22

또한 주님이 요구하시는 헌신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22)라는 사사로운 이 세상 일과의 구별이다. 하지만 여기 장사는 유대 문화를 반영하는 말씀이다. 여기 장사는 이미 장사한 지 1년이 지난 유골을 유골함에 넣는 풍습인데 여기에는 당시 랍비들의 잘못된 장례관을 알게 되면 주님이 왜 이처럼 말씀하시는가를 알게 된다. 랍비들은 육체의 살이 썩은 후에 뼈만 남는 것은 죽은 자의 죄가 구속되는 성화의 과정이다고 가르쳤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장사가 죽은 자의 죄가 구속되는 성화의 과정이다는 말이다.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런 것은 성경에 없다. 그럼 거짓말이자 속임수다.

 

헌신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인간적인 눈으로, 세상적인 가치 기준으로 볼 때에 좁은 문, 찾는 이가 적은 문은 전혀 희망의 빛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럴수록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결단하고서 따라기만 하면 그 다음은 주님이 다 책임져 주신다. 이것이 믿음이다.

왜 믿음의 헌신이 하나님의 복인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과 물질과 시간을 아낌없이 드리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계신다. 그 분은 지금도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말씀은 늘 이것을 약속한다. 이것은 천국에서만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사는 현세(現世)에서까지 받는다.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現世)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來世)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10.28-30)

 

나는 무엇을 따르고 있는가. 헌신이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헌신은 자기 자신은 없고, 그러니 오직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이다. 하지만 이 헌신에는 항상 위기가 찾아온다. 그럼에도 묵묵히 헌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너는 나를 따르라!” 부르신 주님의 소명을 우선순위에 놓는 일에 실패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주님은 단순히 소유의 있고 없음이 헌신의 조건이라 하신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이런 것들이 제자의 진정한 헌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보신 것이다. 그랬기에 한 서기관의 헌신 맹세를 두고 이상하다 싶은 대답을 하시지 않았을까(19 20).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으로 가는 길과 주님께로 가는 길은 공존한다. 산 아래의 8장이 지금 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결단이다. 주님처럼 머리 둘 곳이 없을지라도 기뻐하며 사는 것, 죽은 자들처럼 헛수고하지 않고 주를 따르기로 결단하는 헌신이다. 아무리 봐도 부족하고 볼품 없는 언약한 그릇인데 너는 나를 따르라!” 부르시니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믿고 따르면 된다. 이것이 주를 따르는 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의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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