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6새벽 | 몬1.15-25
빌레몬, 오 형제여!
이제 오네시모는 바울서신 빌레몬서와 함께 골로새교회로 돌아간다. 이제는 유익한 자 되어(11), 사랑받는 형제가 되어(16) 골로새교회와 빌레몬에게로 향한다.
영접하기(15-22)
잘못한 일이나 빚진 것은 ‘잠시 떠나게’ 했지만 하나님은 이 기간마저도 당신의 사람으로 빚으시는 축복의 시간으로 사용하셨으며, 그리하여 ‘영원히’ 오네시모를 얻게 하셨다. 바울은 노예제도 아래 오네시모를 묶어 두려는 것이 아니다. 당시의 제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다. 때문에 노예로서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종 이상의 사랑하는 주님을 믿는 형제로서 소중한 성도임을 잊지 말기를 부탁한다(16-17). 세상의 신분이 하늘의 신분을 능가할 수 없으며, 하늘의 신분은 세상의 신분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바울은 지금 바로 이것을 빌레몬에게 부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끈이 아직 오네시모의 영적 자유함을 방해하고 있다면 그 값을 바울 자신이 친히 지불하겠다고 말한다(18-19). 어쩌면 빌레몬은 오네시모 때문에 재정적인 큰 손해를 본 모양이다. 하지만 더 이상 과거에 매여 있는 모두를 위하여, 특별히 복음을 위해 아무런 이득이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과거의 짐을 훌훌 떨어버리고 복음의 미래로 나아가기를 애정을 다해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20-21).
교제하기(23-25)
“나의 동역자 마가”(24a)가 눈이 띈다. 마가는 바울의 제1차전도여행 행로에서 그만 어찌된 영문인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행13:13b). 바로 이 일 때문에 바나바와도 결별하게 되는 일이 있었던 바(행15.36-41), 그런데 언제인지는 모르나 다시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있다. 그 역시 오네시모처럼 “전에는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 유익하”(11)게 되었다.
작별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가운데 바울과 함께 로마의 감옥에 갇힌 자도 있고(23),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바울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랑받는 의원 누가가 있고(24, 딤후4.11a), 복음을 위해 헌신하던 자리를 버리고 곧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갈 데마도 있다(24, 딤후4.10a).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골로새교회를 방문하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22). 아마도 골로새교회도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때문에 빌레몬에게 자신이 머물 방을 하나쯤 마련해 줄 것도 첨언하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죄수 아닌 죄수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내일에 대한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는 바울에게 조그만 것에 안주하고 싶은 인간적인 틈이 너무나 많은 나의 몰골이 여지없이 대비되어진다.
한 영혼을 향한 가슴 찡한 집중력을 바울에게서 배워보고 싶다. 빌레몬 때문에 오네시모를, 또한 오네시모 때문에 빌레몬을 마음대로 편집하지 않는, 각자의 삶과 인생 그 자체를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볼 수 있는 바울의 균형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좁쌀 같은 나는 아마도 빌레몬과 오네시모 가운데 한 사람을 자꾸만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때문에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11)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일꾼으로 자란 오네시모 같은 사람이 있는가. 내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당당하다 싶을 정도로 얘기하고 또 부탁할 수 있는 빌레몬 같은 사람이 있는가. ‘나의 동역자’라 부를 만큼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