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160주일 | 성경: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가르치고(행8.26-40[2])

1160주일 | 8.26-40[2]

성경: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가르치고

성령: 누군가에게는 임하시어 일하시고

 

복음은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까지 전파된다. 이 일을 해내는 사람은 빌립 집사인데, 그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6.5a)으로 사도행전 증인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그의 동료였던 스데반이 죽임 당한 그날에 큰 핍박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 전역으로 흩어지게 된다(1). 놀랍지 않나요? 사마리아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핍박 때문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신비스럽게도 지상의 교회는 이처럼 고난과 핍박을 먹고 세워지곤 한다.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 구약 성경 이사야서를 읽다.

 

그런데 빌립과 또 다른 쪽에서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內侍, 재무부장관, 27)8장에 등장한다.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고, 그후에 가사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본국 에디오피아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 행로(行路)에서 놀랍게도 그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28). 하나님은 바로 그런 그를 주목하셨고, 이에 빌립에게 찾아오셔서 일어나서 가라!”(26) 명하신다.

본문의 시간표는 사도행전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시가 읽고 있는 이 이사야 예언은 이미 그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일을 성취하신 이후이다. 그럼에도 내시는 비록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살고 있지만, 하지만 지금 구약의 예언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그것이 이미 신약에서,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성취되었다는 것에 전적으로 무지한 상태에 있다. 비록 고위공직자이지만, 예배(제사)와 말씀을 가까이하며 살아가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구약의 시각(수건,고후3.14 참조)에 덮인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그를 주목하신 것은 다름 아니라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은 빌립을 그에게 보내신다(29). 그리고 아직 구약의 시각 안에서 깊이 잠자고 있는 내시의 영혼을 말씀으로 흔들어 깨우신다. 성령님은 빌립으로 하여금 내시와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도록 하신 것이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35) 복음은 이처럼 잠자는 영혼을 깨운다.

말씀이 전해지고, 가르쳐지고, 이해되고, 깨닫게 되고, 믿어지게 되면 반드시 바른 반응이 뒤따르게 된다. 마침내 이방인 내시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일에 기꺼이 응답한다(36-38).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는 복음을 듣고, 그 들음을 통해서 거듭나는 은혜를 받게 되었다. 주 예수를 믿고, 변하여 새사람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 스스로 터득하고 깨달은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한 사람 빌립을 통해서 이루시는 은혜를 그는 받고 있는 것이다.

 

 

빌립 집사: 구약 성경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치다.

 

빌립은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거기에 기꺼이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섭리를 성취한다. 이처럼 성령께서 가라하면 그대로 순종하는 성령의 소리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 확신이나 자기 마음이나 자기 경험대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이고, 성령 안에서 순종으로 일하는 자의 모습이다. 이처럼 성령충만은 성령님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쓰임 받는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35) 그는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여,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자신 안에 알고 믿게 된 복음의 놀라운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고, 소개하고, 가르칠 수 있는 준비된 사람이다. 빌립은 대중전도(5,12) 뿐 아니라 일대일 전도에도 헌신된 탁월한 전도자다. 그는 내시가 읽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구약 이사야 말씀인 것을 알았을 정도다. 그야말로 놀라운 집사다. 뿐만 아니라 이 글에서 시작하여 (35)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준비된 사람이다.

 

두 집사의 이야기는 사도행전 6-8장이 전하는 간증이다. 일곱 중에 하나는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고(7, 스데반), 하나는 사마리아 교회를 세우는 전도자로 헌신한다(8, 빌립). 한편 다른 다섯 집사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 그 중에서 두 사람이니 얼마나 귀한가. 신약교회 첫 순교자였으니 그가 얼마나 대단하고, 또한 정치 종교적으로 유대와 적대적 긴장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에 교회를 세웠으니 이것 또한 얼마나 위대한 공로인가. 그것도 사도가 아닌 평신도 집사들로서 사도행전의 무대에서 불꽃처럼 타오른 설교자요 전도자요 성경교사들이었다.

흔히들 지혜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면(6.3,5) 무엇인가 다르게 살아야 하고,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대단한 역사(役事)를 이루며 사는 그런 스타’(영웅)특종’(대박)을 꿈꾼다. 하지만 예수를 잘 믿어도 죽고, 복음에 붙들려 살아도 핍박과 고난을 받고, 그러니까 세상적으로 볼 때 별반 좋은 일은 하나도 없고 온통 고난과 시련의 연속만을 이어갈 뿐이다. 그리고 그처럼 불꽃처럼 살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도행전 무대에서 사라진다

 

     [사마리아교회]

    ∎성경: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가르치고

    ∎성령: 누군가에게는 임하시어 일하시고

    ∎교회: 누군가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누군가는 세례를 받고

    ∎성도: 누군가는 성경을 배우고, 누군가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

           ∙나는 누구인가?

 

이처럼 흘러가는 사도행전 8장에 누군가는 이 시간에도 성경을 읽고, 또 누군가는 성경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성령이 임하셔서 성경을 성취해 가신다. 말씀이 중심에 놓여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서 사도행전 8장이 쓰여졌다. 말씀이다. 말씀이 살아 역사한다. 에디오피아 국고를 맡은 관리여도, 예루살렘 교회가 세운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어도 이들의 중심에는 세상이 아닌 말씀이 놓여져 있다. 놀랍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하루하루의 인생 여정을 달려간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이처럼 살았을 것이다: ‘예수 인도 하셨네’(은찬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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