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165주일 | 사울이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행9.1-9)

1165주일 | 9.1-9

사울이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마침내 예수님께서 사울을 찾아오신다그런데 그 시기가 흥미롭다. 놀랍게도 아직은 핍박자 사울이었을 때 그를 찾아오셨다. 그렇다면 핍박자이기 때문에 그를 혼내시려고, 또한 그의 죄 값을 찾으시려고 찾아오신 것인가.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 곧 알게 되겠지만 이처럼 하나님의 찾아오심 때문에 전도자 사도 바울의 일생이 시작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사울이 바울되는데 있어서 그가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사울에게 찾아오신다.’ 그러자 설교의 황제 스펄전(C. H. Spurgeon, 1834-92)의 말처럼 그의 변화는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처럼 죄인들을 찾아오신다.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5.8a)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들은 아무도 자신이 ’()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데 있다. 그래서 죄인이다. 지금 사울 역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이름을 대적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26.9).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를 때, 그러니까 아직도 여전히 죄인이었을 때, 이처럼 죄인인 인간을 찾아오신다는 게 놀랍다.

사울은 성령과 반대편에 선 핍박자로 사도행전에 등장(7.58-8.1a)한다. 당시 사울은 여전히 핍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도전하고 핍박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다(8.1b-3). 바로 그때 하나님이 사울을 찾아오신다(1-3).

 

 

사울이야기

 

사울의 생애를 보면, 사도행전이 진행될수록 그는 점점 더 그리스도 밖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다메섹에서 주를 만나기 이전의 삶은 처참하리만큼 일그러져 있었다. 말하자면 사울은 십자가에 걸려 넘어진 영적 소경이다(고전1.23, 고후3.12-18). 그런데 주님은 점점 더 그럴수록 집요하게 죄인 사울을 찾아오신다. 사울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사울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사울의 역사는 반전(反轉)되기 시작한다. 그렇다. 이로써 그의 생애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가 분명하게 나누어진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중요한 주제는 이것이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찾아오신다.’ 누구에게 찾아오시는가? , ‘죄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쓸 만 한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다 드리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다는 것 아닌가.

오히려 이런 사람들과 전혀 반대편에 선 사람, 그러니까 죄인 사울에게, 그가 아직 죄인이었을 그때에 찾아오신다. 사울에게만 그랬는가. 아니다. 죄가 용서되지 않은 사람, 아직 죄 가운데 잠겨 살아가는 사람인데 그를 하나님이 찾아오신다. 죄가 해결된, 그래서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었을 때가 아니다.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하나님이 사울을 찾아오시고 부르신다. 사울은 아직 여전히’(1) 핍박자였을 때, 그러니까 사울이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를 찾아오셨다. 하나님은 여기서부터 시작하신다.

다시 얘기한다. 사울에게만 그러시는가. 아니다. 그러면 누구에게도인가. 우리에게도, 나에게도 그러셨다. 내가 내 죄를 다 씻고, 자백하고, 깨닫고, 회개하고, 그래서 그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이 기다리셨다는 듯이 나를 찾아오신 것이 아니다.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주님은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4) 저주받아 마땅할 때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그랬으니 죄를 죄라고 볼 수 있는 일에 전적으로 무능할 때, 바로 그때에 심판 받아 마땅한 아직 여전히 죄인인 그런 나를 찾아오셨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4)

       → 주여 누구시니이까.”(5a)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5b)

 

한편, 사울은 마침내 주님을 만난 이후에 다음 몇 가지 사실들을 비로소 알게 된다. 첫째, 예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또 인생들을 찾아오신다(3). 둘째, 하나님을 위한다는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것이다(4). 예수님의 [양과 염소의 비유](25.31-46)를 생각하게 한다. 셋째, 나무에 달려 저주받아 죽어 끝이 난 것이라 생각했던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있다(5, 22.14). 그런데 자신은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모르고 있다. 율법은 이것을 자신에게 알려주지 못했다. 넷째, 주님이 찾아오신 자는 자기 열심, 자기 열정, 자기 확신이 아니라 -그것은 옳지 않았다- 주께서 하라 하시는 일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6 15-16). 사명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죄인이기에, 죄 아래 있기에, 이처럼 아직 죄 아래 있는 그 때에는 결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비로소 주님을 만난 이후에야 알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시작된 기적이다.

그런데 핍박자 사울에게 예수께서 찾아오셔서 그를 부르시는 장면에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7)는데 그때 오직 사울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다. 예수님을 능멸하던 성난 황소요 고삐 풀린 망아지에서, 이제는 변하여 식음을 전폐하며(9), 기도하는 사람으로 바뀐다(11b).

그렇다면 무엇이 사울로 하여금 이와같은 사람으로 변화되게 했을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사울이 아직 핍박자였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이전에는 죄인 중에 괴수였다”(딤전1.13). 이런 그가 아무 공로 없이, 값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울을 깨어나게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게 한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6)

 

사울이 바울 되는 유일한 길은 무엇인가? 자기 반성인가. 자기 확신인가. 혹은 자생적이거나 자기 노력(공로)을 통해 자신 안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아니다. 왜 아닌가. 사울이 바울 되는 사건은 하나님의 사건이기 때문이다(고후4.6). 핍박자 사울은 자기 스스로 사도 바울될 수 있는 자격도, 능력도 없다.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후에 이처럼 고백한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a)

하나 더 생각할 것은, 그 사울이 이 바울 되기 위해서는 이어서 고통이 따른다(8-9). 이처럼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이라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놀랍게도,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의 기회가 된다. 하나님이 만지실 때는 이처럼 아프다. 그분이 원하는 작품으로 빚으시는데 어찌 고통이 없으랴. 하지만 오늘의 고통은 내일의 행복을 여는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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