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12수요 | 예수님께 배척 당하는 게 더 비극이다(막6.1-13).

112수요 | 6.1-13

예수님께 배척 당하는 게 더 비극이다.

 (맛있는 마가복음, pp.65-68)

   

말씀을 들으면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거부하든지 반응이 뒤따른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의 설교에 대한 회중들의 반응(행2.37),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청중들의 반응(행7.54)에서 극적으로 소개된다. 모두가 다 말씀이 선포될 때였다. 똑같이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라는 1차 반응을 보였는데 하지만 2차 반응은 전혀 달랐다. 하나는 우리가 어찌할꼬!”였고, 다른 한쪽은 ()를 갈거늘이었다.

지금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반응이 스데반의 청중과 흡사했다. 다른 어느 곳보다도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말씀 이후의 반응은 이처럼 차갑기만 할까.

배척 당한 것은 이웃만이 아니었다. 친속들마저도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면서 방해했다(막3.21). 그뿐 아니다. 성경을 가장 잘 안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예수님은 줄 곧 배척 당하셨다(막2.6-7,18,24, 3.2,6,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라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탄에게서 온 존재라고까지 비난했다: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막3.30)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5b). 그 이유는 고향은 주님을 배척했지만 주님은 그 고향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점에서 그렇다. 넘어지고, 포기하려 할 때 주님은 이처럼 언행(言行)하신다: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6b)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다 가슴에 품고 묵묵히 십자가로 나아갔음을 나로 하여금 회상케 하신다. 놀라운 사랑의 눈빛으로 나를 격려하신다.

주님은 지금도 모든 촌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파하신다. 그러므로 복음의 행진을 가로막고서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언젠가 때가 되면 그 역시 빈 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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