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078주일 | 교회, 말씀과 기도로 세워진다(행1.15b-26).

1078주일 | 1.15b-26

교회, 말씀과 기도로 세워진다.

 

교회론적 관점에서 사도행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선교, 전도, 성령, 사도, 세계복음화 등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의 복음서 이후를 말씀하시는 메시지를 주목할 때 사도행전을 교회의 빛에 비추어야 하는 것이 맞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여기서 이 반석은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는 신앙고백이다. 그렇다면 지금 사도행전 1장은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 위에 바로 그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주님의 승천(昇天)을 목격한 이후, 증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왜 그런가? 이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 24.52-53)는 주의 명령 때문이다. 왜 이처럼 순종하는가? 이 흐름의 중심에는 세워지는 사도행전 교회가 있어서 그렇다.

, 그렇다면 사도행전 교회는 무엇으로 세워지는가?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교회에 우리를 비추어 보는 것이다. 주께서 사도행전 교회에 오늘 우리 교회를 비춰보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말 씀(15b-23)

 

주의 약속이 성취되기 이전에, 먼저 해야 할 일에서 시작된다. 모인 120 명의 성도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이 일에 대하여 다같이 말씀 앞에서 아멘하고, 이어서 말씀을 이루기 위해 기도함으로써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부족한 것을 보충한다.

정리하면, 사도행전 1장은 복음서와 흥미로운 조화(일치)를 이룬다는 점이다. 복음서의 예수님의 말씀의 자리는 사도의 설교로, 또한 예수님의 기도의 자리는 공동체의 기도로 각각 사도행전 교회에서 예수님의 뒤를 잇는 것으로 계승한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그냥 말로만 던지는 연설에 불과하지 않았듯이 사도행전에서도 베드로의 설교는 역시 그냥 설교하다로 끝나지 않는다. 이처럼 베드로의 설교는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에 응답하는 것으로,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선포된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교회 시대에도 변함없이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잊지 않아야 할 부분이다. 이처럼 복음서의 예수님 사역과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사역은 연속성을 가지면서 계승되고 있다. 오늘 우리 교회들도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설교되어질 때 사도행전을 계승한 교회로 쓰이게 된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유다가 행한 일에 대해 구약을 관통하면서 그 구약 예언(말씀)의 성취를 말하며 말씀을 전하는 베드로가 등장한다. 그는 복음서에서의 연약함과 무기력과 불신앙을 이겨내고 설교자로서 사도행전 교회 앞에 등장한다.

이를 정리하면, 가룟 유다에 대한 베드로의 신학적 통찰(16-20)은 다윗의 시편(과거/구약, 20) 말씀이 가룟 유다에게서 성취된 것은 성령님께서 다윗의 입을 통해 미리 예언하게 하신 것임을 통찰한다. 그런 다음에 사도를 보선(補選)하는 일을 통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일(미래/사명, 22)을 바라본다. 참으로 놀라운 메시지와 그에 따른 순종이다. 베드로는 교회의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관통시킨다. 그는 시편(69.25, 109.8)을 오늘의 무대로 끌어당겨 연구하고 해석하고 적용하고 선포한다. 이를 한 마디로 하면 이렇다: ‘유다라는 악제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씀 위에 선 바른 교회의 방향(흔들림 없음)을 알리고 있다.’

가룟 유다에 대한 마무리까지도 사사로운 값싼 감정이나 개인적인 잣대를 따라 하지 않고, 오직 구약의 말씀까지를 그 성취의 틀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점이다. 그의 메시지에 힘이 있는 것은 이미 일어난 현상을 말씀(계시)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드러내는 문제 제기만이 아니라 그러면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교회론적 대안을 찾고 제시하는 리더십을 동반한 살아있는 설교였다는 점이다. 그러니 사도행전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지는 것 아니겠는가.

마침내 120명의 성도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동시에 이를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응답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간구한다. 이로써 베드로는 복음서에서 보여 준 모든 옛 생활의 무거운 짐을 마침내 벗어버린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교회를 통해서다. 이처럼 베드로의 언행에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고, 바로 그 말씀을 따라 교회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설교자의 모습이 들어있다.

 

 

기 도(24-26)

 

또한 사도행전 교회는 무엇으로 세워지는가? 베드로의 설교(말씀)에 이어지는 기도다. 주님이 십자가를 앞둔 자리에서 자신의 뜻을 구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였던 것, 그것을 기도라 하셨고, 주님은 이처럼 친히 기도하셨다. 그런데 시작된 사도행전 교회 역시 이처럼 기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저들은 무엇을 기도하는가. 자기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세우는 식의 사도가 아니라 주의 택하신’(24) 자로서의 사도를 기도함으로 기다린다: ‘주님께서는 이 두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하셨습니까?’(쉬운성경) 그렇다면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 것이다. 기도는 분명히 모인 120명의 사람들을 통해서 진행되고 있으나, 그러나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믿었다. 그래서 대신할 자’(25)를 주께서 보여주시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 사도의 직분을 맡을 사람이 누구인지를 저희에게 보여 주십시오.’(쉬운성경)

기도는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말하는가가 핵심이 아니다. 나의 확신과 뜻과 계획과 비장함을 무기로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도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묻는 것이고, 그분에게 맡기는 것이고, 그래서 그분이 인도해 주시는 것을 그대로 따르고 받겠다는 결단이요 헌신이다. 응답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지 땅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증인’(8)들은 기다리라’(4)는 명령과 받으리라’(5)는 약속을 따라 교회로 모였다(15).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사양하고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이어서 오직 기도하는 일만을 계속했다. 보십시오, 이것이 사도행전 교회다. 한편 얼마나 여러 날들 동안을 기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활하신 후 40일이 지나고(3) 오순절(2.1) 그 사이 어간이었을 것으로 볼 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교회는 이처럼 기도행전으로 세워지고 있다. 교회가 기도로 세워진다는 것은 지금도 동일하다.

이것은 복음서에서 주님께로부터 친히 배운 신앙이자 훈련이었다. 주님은 언제나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다(5.16, 6.12, 9.18, 11.1). 더욱이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서 친히 기도하시는 주님(5.7)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은 이들에게 더 없이 좋은 훈련의 모범이고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밀려올 때 이들은 자연스럽게 기도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교회는 말씀과 기도로 세워진다. 1장에서 준비되고 있는 사도행전 교회의 견고한 두 기둥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성경, 설교)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공동체의 기도다. 이 두 기둥은 복음서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으로써, 그렇다면 이를 그대로 순종하며 언행하고 있는 사도행전 교회는 복음서와 일치하는, 이렇듯 복음의 연속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인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말씀은 베드로, 즉 설교자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그러면 기도는 누가 하는가. 사도행전 교회와 성도들 모두가 다같이 한다. 이 평범한 사실 속에 교회의 신비가 있다. 교회는 말씀과 기도로 세워지고 자란다. 그러므로 이 두 기둥의 터 위에 세우는 교회를 위해 우리 모두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시작되는 1장의 사도행전 교회는 이 기본기에 충실하게 응답한다. 이 복된 부르심이 우리에게도 주어져 있다는 것을 오늘 말씀에서 받아 아멘하기를 바란다. 사도행전 1장처럼 나에게 말씀과 기도가 자리하고 있다면 내가 바로 교회다. 우리가 교회다. 한 주간 이 두 기둥을 붙들고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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