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256새벽 | 야곱의 귀향(歸鄕): 20년을 읽어내는 간증(창31.1-16)

256새벽 | 31.1-16

야곱의 귀향(歸鄕): 20년을 읽어내는 간증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3)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5b)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7b)

    “하나님이 이같이 ”(9)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11)

    “라반이 네게 행한 것을 내가 보았노라.”(12b)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지금 일어나 돌아가라.”(13)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제물은 ”(16a)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16b)

 

귀향을 서두르는 야곱, 그의 밧단아람 20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벧엘의 하나님(28.10-22, 31.11-13)은 변함없이 늘 신실하시다. 20(38,41)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시다. 하지만 야곱은 어떤가.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찾아오심, 음성, 심방)를 받을 만한 어떤 특별한 점이 발견되는가.

종종 우리는 하나님의 현현을 맛보려면 어떤 공로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정리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불러올(부릴, 조종 할) 수 있을 그런 자리에 있다고 하기엔 넘어야 할 숙제가 많다. 만일 이런 가정이 맞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과 힘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분이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

귀향길에 오르는 야곱의 경우에도 그렇다. 그는 하나님을 유리하게 이용해 먹을 만큼 그리 탁월한 업적이 없는 사람이다. 최소한 밧단아람 20년의 세월들은 그렇다. 우리는 믿음이 좋다면, 성령충만하다면, 기도 많이 하고서, 거기에 40일 금식이라는 평범치 않은 노력(, 공로, 행위)까지 겸비한다면 하나님을 얼마든지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고 불러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오만이요 교만이며,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적절하다.

 

귀향, 그 은혜의 길이 열리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앞서 얘기한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은혜다. 부족하고, 아직 거룩하다(온전하다) 하기에는 턱없이 함량미달인 야곱이며, 그의 행위 역시 하나님이 찾아오시기 할 만큼 완성도가 높지 못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그를 찾아오신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분은 늘 이렇게 일하신다. 아무런 자격도, 공로도, 능력도 없음에도 그런 자를 사랑하시는 은혜의 호흡을 멈추지 않으신다.

 

귀향, 그 서원의 길이 열리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를 축복하신 것은 둘째, 20년 벧엘로까지 올라간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13) 하나님은 어떻게는 축복을 받아야겠다며 형과 아버지를 속인 야곱이지만 그가 잠시 도망자가 되어 피난길에 벧엘에서 행한 서원과 기도를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수태고지(25.23)를 통해, 그리고 아버지의 축복을 통해, 동시에 무엇보다 여기에 응답하기 시작하는 벧엘의 고백을 기억하신다.

이로써 그는 밧단아람에서의 20년 생활이 비록 외삼촌 라반으로부터 속임을 되받는 참담한 시간들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축복으로 돌리셨다(7-12). 하나님은 벧엘의 기도와 서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아픈 만큼 성숙하다.

이처럼 변화(성장과 성숙)의 조짐은 분명하다. 야곱은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 쪽으로, 언약 속으로, 하나님께 응답해 내는 자로 세워져간다. 20년 전(38,41) 라반과 야곱이 처음 만났을 때는 두 사람은 다 속이는 자였다. 그런데 서로 부딪히며 지낸 세월 가운데 라반(30.27; 31.24,29)과 야곱(30.30; 31.3,5,7,9,11-13,16) 이 두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고백할 만큼 성숙해 있다. 놀랍다. 무엇보다 야곱은 앞에 자신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 그리 큰 흠이 없는 세월이었다는 뜻이다.

그는 귀향길에 나서기에 앞에 모든 상황과 환경을 하나님으로 읽어낸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도 찾아오셔서 확증하신다. 물론 이제 아내들도 남편 야곱의 제안을 들었을 때 이 일이 하나님께로서 난 일임에 대해 의견을 함께 한다(16). 이로써 라반과 야곱 사이에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다. 마침내 귀향을 위한 준비는 끝이 났다. 이제 출생지로 돌아가는 길, 이 길은 과연 속고 속이는 인간의 노림수가 좌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앞서 풀어가 주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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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이루어 가심... 그 앞에 순종으로 불평하지 않고 조상의 땅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하심에 채비를 하는 야곱의 그맘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더 험난한 일들이 펼쳐지겠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건 그저 주님을 따르고 10년 20년 야곱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묵묵히 주어진 일에 오직 하나님의 행하심에 순종하며 살 수 있을지 저를 돌아봅니다.

    하루가 저물어 가고있지만 잠잠히 울러퍼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묵상으로 나아갑니다. 오늘도 감사한 하루를 정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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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모든 일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야곱은 아내들, 사랑하는 자녀들을 이끌고 아버지와 형님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근차근 진행해 가고 있다.
    아버지와 형을 속여 아마도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하나님이 이르신 일을 치밀하게 준비하여 준행해 가는 야곱의 모습을 보니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섭고 두렵고 겁이 나지만, 주님의 명령이기에... 하나님의 뜻이기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야곱의 성숙된 태도를 보고 적잖이 놀라웠다.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주의 백성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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