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51주일 | 다시 목마르십니까?(요4.1-14)

151주일 | 4.1-14

다시 목마르십니까?

 

     [사마리아 여인]

     유대인인 당신(9)

       주(kurie, 11)

         우리들의 조상보다, 야곱보다 큰 이(12)

           주(kurie, 15)

             주, 선지자(kurie, propetes, 19)

               [메시야, 그리스도(mesias, cristos, 25)]

                 → 그리스도(cristos, 29)

                      구주(soter, 42)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Sychar)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5a)

한 인생을 정복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친히 사마리아로 찾아오신다: 유대 사마리아 수가우물가 여인 그리고?(나를?)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5b-6a)

    여인, 사마리아 야곱에게서 멈추다.

    그러니 생수(영생, 예수) 앞에서 물을 찾는다.

    야곱이 최고라 말한다.

    누구 앞에서인가? 예수 앞에서다.

    진리를, 예수를, 생명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수님과 맞짱을 뜬다.

    이게 세상이다.

  

물을 좀 달라!”(7b)

    나는 너에게 생명수를 줄 수 있다.

    나는 그럴 수 있는데 너는 그걸 내게 줄 수 있느냐?

    아니, 지금껏 그것을 야곱의 우물이 정말로 주긴 주더냐?

  

네가 만일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10a)

    나는 너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줄 수 있다.

    그 물을 내가 준다는 것을 결코 알 턱이 없지?

    상관없단다, 그래도 난 너에게 준다.

    너, 그게 필요하지 않느냐?

    다시 말하지만 그럼에도 너는 그게 필요한 것인지로 모르지?

  

그런데 왜 사마리아 여인은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까?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진리가 자신 앞에 서 있다고 해서 인간이 스스로의 힘과 노력에 의해 그것을 깨닫거나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말대답이나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의 특징이 이와같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이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4)

일대일 성경공부는 점점 깊어지고 있다. 예수님 없이도 야곱을 시작으로 성경을 자기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 야곱이라는 과거를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 하루하루 필요한 물만 있어도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 사마리아와 이스라엘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날마다 갈증과 목마름에 허덕이는 사람, 이 육신의 샘을 그리스도 삼아 헐떡이며 살아가는 사람, 그가 바로 예수 없이 야곱의 샘만으로 살아가는 자다.

그런 그녀가 주님을 만났다. 아니, 주님이 그 인생을 만나 주셨다. 그리고 진리를 가르치고, 영원을 이야기하고, 영생하도록 하는 생수를 이야기하는 자리로 나아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 야곱의 샘만으로 살던 인생에게 주님이 오셨다. 딸아, 나다. 내가 왔다. 넌 아직 나를 모르지? 내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인 줄 모르지? 그러니 내 앞에서 야곱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지? 그래 내가 안다. 여인아, 너는 나를 모른다. 내가 너에게 나를 알리고, 주고, 보여주는 수 밖에... 그러려고 내가 사마리아엘 왔다. 바로 너에게로 왔구나.

과연 이 만남을 통해 어떤 기적이 일어질 것인가?

    

*[예배설교] -> 주일설교나 유튜브(김충만 목사, 양무리교회 검색)로 가시면 설교를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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