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찬양 | 히11.1-3
•맥잡기: 예수 그리스도(A)로 산다(B).
[A] 예수 그리스도(1.1-10.18)
우월성(1.1-4.13)
제사장직(4.14-7.28)
중보자(8.1-13)
희생 제물(9.1-10.18)
[B] 그리스도인의 생활(10.19-13.25)
[C] 끝맺는 인사(13.18-25)
•히브리서를 읽으면 1세기 유대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어제까지도 양(羊)과 비둘기를 잡아 제사를 드리던 자들이 예수의 복음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과거에로의 회귀, 즉 구약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율법주의(공로주의, 유대주의)자들이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교회 안에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소위 “율법으로 돌아가자!”는 미명하에 교묘하게 혼합되어 ‘다른 복음’(갈1.6-10)이라 명명된 ‘非복음’, 곧 ‘半복음’(semi-Gospel)을 말이다.
히브리서는 이렇듯 두 사이에 서서 머뭇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 안에서 구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을 안내한다. 복음은 구약에 대한 바른 이해를 요구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계시의 빛 아래서 구약을 읽어야 하고, 또 그래야만 구약은 바르게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후3.12-18). 구약은 복음을 미리 내다 보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구약을 완전케 한다(마5.17). 그래서 기독론(基督論)이다:
그리스도
선지자보다 우월하시다(1.1-3).
천사보다 우월하시다(1.4-14).
모세보다 우월하시다(3.1-19).
여호수아보다 우월하시다(4.1-13).
제사장들보다 우월하시다(4.14-16).
아론보다 우월하시다(5.1-10).
멜기세덱보다 우월하시다(7.1-28).
하나님의 복음 이야기는 다시 그리스도 이전으로 돌릴 수 없다. 다시 구약의 제사로 되돌아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욕보이는 것이고,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거역하는 것으로써 이는 어떤 경우에라도 용서받을 수 없다.
생각해 보라. 만약 구약으로 된다면? 그러면 행위(제사와 율법)로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이루신 사역, 즉 십자가의 구속은 무의미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위로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구약을 문자대로가 아닌 복음(그리스도)의 빛에 비추어 십자가의 은혜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믿고, 신약의 빛에 초대해 낸다. 6월을 이 히브리서로 묵상하고 읽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