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384주일 | 그러면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눅10.25-37)

384주일 | 10.25-37

그러면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율법사(25) -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26)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율(27) – ❶ 하나님 사랑(6.5), 이웃 사랑(19.18)

   예(28)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율(29)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그러면 이웃을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메시지)

       예(30)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① 한 제사장(31): 피하여 지나가고

       ② 한 레위인(32): 피하여 지나가고

       ③ 사마리아인(33-35): 불쌍히 여겨 돌보아 갚으리라

          →

              예(36) -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37a)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37b)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영생과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 삶이 만난다.

[1차 정리] 영생과 사랑(하나님, 이웃)이 율법에서 만난다. 그가 이미 이웃 사랑이라는 율법을 따라 행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그는 이미 영원한 생명에 가까이 살고 있다.

[2차 정리] 그렇다면 이웃이 누구인가?’로 이어진다: 그러면 이웃을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The Message) 영원한 생명과 이웃 사랑이 만나면서 그럼 이웃이 누구인가에 주목하게 된다. 그렇다면 세 사람의 삶의 방식 가운데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임과 동시에 영원한 생명에 가까이 가 있는 삶을 사는 것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해서 정리하면 이렇다: 율법교사인 네가 영원한 생명으로 살려고 한다면 강도 만난 자에게 자비를 베품으로서 너도 사마리아 사람처럼 그의 이웃이 되어 살아라.

 

선한 사마리아 사람

(1) 강도 만난 자와 그를 본 세 사람, 누가 그의 이웃인가? 중요한 것은 이웃의 자격이나 조건이 그 사람의 신분(직함, 지위, 직업)이 아니다. 핵심은 그를 보았음에도 피하여 지나가고’(①②)에 있고, 또한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돌보아 주니라’()라는, 그러니까 강도 만난 자에 대해 어떤 반응과 행위를 했느냐에 있다. 제사장이고 레위인이고 사마리아 사람이냐에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고 아니고의 어떤 흔들 수 없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2) 이웃의 자격은 강도 만나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겨 돌보아 주니라’()를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웃 사랑이며, 동시에 이것이 율법이 명하는 영생에 이른 자다.

(3) 그렇다면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준 것인가. 아니다. 이 율법을 지키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이웃 사랑을 행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교회는 구제기관이 아니다. 그렇지만 또한 예배하는 곳만은 아니다. 한편 교회는 예배하는 곳이다. 그러나 구제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사회복지와 구제는 국가가 알아서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잘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이 그림을 교회 밖 세상에서 교회를 바라보면 좀 달라진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교회의 종교적 행위와 기능에 박수 치지 않는다. 세상은 제사장이나 레위인이라는 소위 교인들이 강도 만난 자를 보고 지나가면서 교회에서 종교생활만 잘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제사장이나 레위인으로만 잘 지내면 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러면 선생님은 이웃을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29) 라는 율법사의 질문은 그러면 예수님은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로 적용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분명 어떤 교회이기를 요청 받고 있는가. 하나님은 물론이고 세상 또한 우리를 주목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다른 말로 하면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자 교회의 공공성이다. 교회는 이미 교회 자체만의 생존을 위해 존재할 수 없다.

 

    Q 여러분은 우리 양무리교회(이웃, 그리스도인)를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A 강도 만난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그의 이웃이 된 사마리아 사람 같은 교회입니다.

      *네 주님, 오늘도 고통과 염려와 아픔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이웃으로

        살아가는, 주님께서 세운 교회되기를 원합니다.

 

    그럼 주님이 뭐라 하실까요?

    ‘너도 그와 같이 하라!’

 

    성도 여러분! 그러면 여러분은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교회는 지금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을 요구받고 있다.

    이것이 빛으로 소금으로 부름 받은 교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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