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342주일 | 성찬상 앞에 나아갈 때마다(고전11.23-26)

342주일 | 고전11.23-26

성찬상 앞에 나아갈 때마다

 

_왜곡된 애찬(17-22)

고린도교회는 성찬(애찬)이 유익이 없고, 도리어 해로움이 될 정도로 무너졌다(17). 주님은 당신의 몸을 쪼개어(떼어, 24a) 주심으로 마치 각을 뜬 제물로 말미암아 속죄가 이루어지듯 그렇게 쪼갠 떡을 받아 먹는 자마다 살아났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끼리 편당을 만들고, 살리는 게 아니라 서로 쪼개어 나누어졌다. 주님은 당신 자신을 쪼개 떼어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는데 고린도교회는 반대로 서로 나누어 쪼깨졌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 편끼리만 애찬을 나누는 일까지 서슴치 않았다(18). 주의 성찬(애찬)의 거룩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이 성만찬에 대한 우리 주님의 말씀, 곧 성만찬신학이다.

 

_성만찬신학(23-29)

성찬의 참된 의미는 주의 육체적 죽으심을 기념하면서(24),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언약의 은총(25)을 주의 재림 때까지 전하며 기념하는 거룩한 예식이다. 먼저 떡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제물로 죽어 주신 주님의 몸을 상징(sign)한다. 주님은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생명의 떡)이시며,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산다(6.53-59):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58)

또한 잔은 나의 죄를 씻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 주신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상징(sign)한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9.22) 그 밖에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너무나 많다(5.9, 1.7, 1.20, 10.29, 13.12, 요일1.7, 1.5). 역시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으니라.”(6.53)

중요한 것은 이 성찬에 대한 가르침이 바울의 창작이거나, 혹은 초대교회의 전통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에 가라사대 ”(23-24a) 앞서 읽은 요한복음 653-59절 말씀이 역시 그러하다.

정리하면 성만찬(23-25, 22.14-20)은 이런 신적(神的) 기원에 따라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거룩한 예식이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여기에 26-29절을 절묘하게 연결함으로써 고린도교회가 훼손해 버린 성만찬을 다시 회복할 것을 요청한다: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26-27, 새번역)

이제 고린도교회가 할 일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후에야 먹고 마실지니”(28)로 이어지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를 살핀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주의 잔이나 떡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지 않겠다(27a).

        =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지 않겠다(29a).

           →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27b).

                자기의 죄(심판)를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29b).

 

이제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성만찬선언]에 회개와 함께 변화된 언행으로 응답해야 한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28). 그것은 이어지는 말씀, 즉 성만찬은 단순히 이 예식이 집행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성만찬을 대하는 현재와 그 이후가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렇듯 자기를 살피는(test) 일에 실패하면(28), 성찬은 자기를 심판하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경고다(29). 그러니까 비록 빵(떡덩이)이지만 그것이 일단 성찬일 때는 그것에 들어있는 주님의 몸이라는 신앙을 고백하는 일에 실패하여 단순히 식사꺼리로 밖에 여기지 못하는 것이라면 성찬은 자기를 심판하는 것을 거두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_성만찬의 두 날개(30-34)

성찬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30절 이하다: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또 이미 죽은 이들도 적지 않은 것입니다.”(30, 새번역) 그래서 어떠하다 하는가: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31) 그러니까 성찬이 무엇인가를 잘 살폈다면 30절이라는 결과가 이어졌겠는가.

 

떡과 잔을 받으면 자동적(기계적)으로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니다. 성찬상 앞에 나아오기에 합당한 모습이 있어야 한다. 주 예수께서 당신의 몸을 -지금 우리가 받게 될 이 떡처럼- 십자가에서 떼어 우리에게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난 것이다. 그럼 이 떡을 받을 때 우리는 어떤 결단과 은혜와 고백을 드려야 할까. 바로 이 모습과 자세와 마음을 가지고 성찬상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받아든 떡을 통해 은혜를 주시며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동시에 잔을 받을 때 주 예수께서 당신의 피를 -우리가 받는 이 잔처럼-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다 흘려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었다. 그럼 이 잔을 받을 때 우리는 어떤 결단과 은혜와 고백을 드려야 할까. 바로 이 모습과 자세와 마음을 가지고 성찬상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받아든 잔을 통해 우리 안에 임재하신다. 갚을 길 없는 이 은혜 앞에 그냥 감사해요, 주님!’이라 고백하는 것 뿐이다. 그럴 때 오늘 우리의 성찬 가운데 주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

탕자와 같은 못난 자도 다시 아들이라 받아주시며 아버지의 잔치에 초대하신다. 성찬이 그러하다. 오늘 이 아침 죄인이지만 죄인이라 정죄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십자가로 죄와 사망과 죽음과 고통을 다 해결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살과 피로 초대하신다. 왜인가. 살리시려고, 은혜 안에 살라고, 아들과 딸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이제는 죄와 자신을 이기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고, ‘너는 나의 영광이라!’ 높이시기 위해서다.

이것이 오늘 성찬상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더 새롭게 한다. 오늘은 성찬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뵈옵는 주의 날이다. 찬송가 264정결하게 하는 샘이” 1절을 부르시면서 성찬상 앞에 나아가자!

 

*[예배설교] -> 주일설교나 유튜브(김충만 목사, 부산 양무리교회 검색), 또는 김충만 목사 홈페이지(www.thesermon.org) 가시면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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