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68새벽 | 포로.멸망.심판.이방.절망, 그런데 하나님은...(겔1.1-14)

68새벽 | 1.1-14

포로.멸망.심판.이방.절망, 그런데 하나님은...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5년 그달 초닷새라.

   3 갈대아 땅 그발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느니라.

  

3045일에(1a)가 에스겔의 나이라면 그는 25세까지 예루살렘에 있었다(2). 에스겔(‘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시다’)은 제사장이면서 예언자다(3). 그는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BC 598.12 - 597. 3) 함께 갔는데 그때 그의 나이 30세였다(1). 그러는 사이에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맛다니야, 597-86, 왕하24.18-25.21)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BC 586)까지 11년을 다스린다. 요시야의 셋째 아들이고 여호야긴의 삼촌인 맛다니야(시드기야)가 바벨론에 의해 왕위에 오른 것이다.

한편 에스겔은 바벨론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1)을 보게 된다. “하늘이 열리고”(1a)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는 순간 여호와’(4- , 바퀴 달린 보좌에 계신 하나님)’(인자, 포로.멸망.심판.이방.절망, 1-3)가 엄격하게 구분된다. 예언자라도 그는 여전히 포로의 땅에 끌려온 자에 불과한, 이것이 포로기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다.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은 패배한 상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분은 이스라엘처럼 거적을 뒤집어쓰고, 몰락한 촌로처럼의 행색을 한, 다 깨어진 그런 신()의 모습이 아니다.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의 모습이며(1), ‘여호와의 권능’(3)으로 충만하시다. 그분의 모습은 네 생물의 형상’(5)과 얼굴을 가지신 바퀴 달린 보좌의 앉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패배와 이스라엘의 패배는 분리된다. , 이스라엘은 포로기일지라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이 부분이 포로기일지라도 이스라엘이 희망인 이유다. 우리가 그렇잖은가. 바벨론 포로기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죄의 무거운 짐 가운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고 있다 할지라도, 바로 거기에 오늘 에스겔에게처럼 하나님이 찾아오신다면 그곳이 곧바로 희망과 소망과 은혜와 회복과 사랑과 구원이 임하는 거룩한 시작이 되는 것이니까.

 

에스겔은 25세까지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예레미야의 설교를 들었다(1). 그렇다면 그는 요시야의 개혁기(대하34.1- ), 특별히 성전을 수리하면서 율법책을 발견할 즈음에 태어나 요시야의 종개개혁기 절정에 10대를 보냈다고 보는 게 맞다(대하34.8, 왕하22.1-23.30). 그리고 요시야의 둘째 아들 여호아하스(3개월, 왕하23.31-34), 장남 여호야김(엘리아김, 608-598, 왕하23.35-24.7)11년을 다스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 에스겔도 그의 나이 30세 때 함께 포로로 끌려간 것으로 보인다(1-2).

 

제사장이지만 제사도, 성전도, 율법도, 모두가 다 무너진 이방의 바벨론 포로의 땅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찾아오신다. 오늘 그렇게 나와, 우리와,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를 찾아오신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절망하여 눈물 흘리는 무너진 내 마음과 영혼의 좌소에 찾아오신다. 그렇게 희망은 시작되고,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와 회복은 시작이 되고, 다 끝난 듯 토해내던 패배의 절규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다.

하나님이 임하시면 그러하다. 이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는 복음의 구약적 성취가 아니겠는가. 주여, 이처럼 나에게도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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