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주일 | 겔36.32-38
‘그래도’를 명 받았습니다.
이미 예루살렘은 함락되었다(33.21; 26.1 참조). 그렇다면 이것으로 끝인가.
하나님의 열심(32-36): 先정결, 後회복
先정결, 後회복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22b)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23)
→ 마침내 ‘회복’: “고국 땅에 들어가서”(24)
[1]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25-31)
① ‘새 영을 너희 속에’(26a)
② ‘새 마음(부드러운 마음)을’(26b)
③ ‘곡식이 풍성하게 하여 … ’(29-30)
[2]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는 날”(32-36)
①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되며’(33b)
② ‘황폐한 것이 건축하게 할 것인즉’(33b)
③ ‘황폐한 땅이 장차 경작이 될지라’(34)
▪이렇게 해서 36절이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다 하겠다, 그러니까 너희 이스라엘이 뭐 잘나서 회복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꿈에도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 하신다. 이스라엘이 한 것은 죄와 하나님을 떠나 자기들 마음대로 살아버린 것 밖에 없다. 딱 거기까지다. 그래서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간 것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이 당신의 ‘거룩한 이름’(22b)과 하나님 당신의 ‘거룩함’(23)을 위해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겠다고 36절에 선언하신다. 이를 우리에게 익숙한 신약의 메시지로 말하면 ‘은혜’다. 이게 바울이 에베소서 2장 1-10절에서 토해내는 복음 아닌가.
이스라엘의 열심(37-38): 그래도
아니, 이미 하나님의 36절로 다 된 것 아닌가. 그런데 37절을 요구하신다. 그렇다면 37절은 뭘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이 다 이루시겠지만 그것이 이스라엘이 기도한 것으로 응답되어 성취되는 모양을 만드시겠다 하신다.
오늘 에스겔서에서는 하나님이 다 하셔도 이스라엘(‘나’)로 하여금 기도하라고 말씀한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탕자의 비유를 아십니까. 당신이 아버지이시기에, 기다려 주셨기에, 아직 거리가 먼데 아들인 것을 알아보시고 달려 나오셨기에 아들 탕자의 회복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돌아왔기에, 회개했기에,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찾고 기도했기에 이루어진 회복이라는 모양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신다. 에스겔 36장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기도하자!’라는 고백을 토해내게 만드신다면 어쩌면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것을 이루시는 그림으로 새 일을 시작하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바로 여기에 ‘그래도’의 비밀이 자리한다. 기도가 내가 기도해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만들어진다면 내가 기도의 주인(주)이고 하나님은 나의 종이다. 그러나 내가 기도해서 내가 원하는 응답이 온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시려고 기도하라 하신 것이라면 그 안에는 하나님의 깊은 애정과 섭리와 목적과 원하심이 흐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의 심정과 의도와 목표를 알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아,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 하실 일이 있으셨구나”를 알게 된다. 이렇듯 기도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경험해 가는 살아있는 신묘막측(神妙莫側, Wonderful) 한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다. 이 선물이 ‘그래도’를 통해 우리에게로 오고 있다. 오늘 우리 모두는 ‘그래도’를 명 받았다.
*[예배설교] -> 주일설교나 유튜브(김충만 목사, 양무리교회 검색)로 가시면 설교를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