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새벽 | 창34.1-17
세겜의 비극1: 딸 디나가 욕보이다.
강간 당하는 디나(1-12)
▪[아브라함언약]
“네 자손이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15.16a)
“내가 이 땅을 … 네 자손에게 주리니”(15.18)
▪[아버지 이삭의 축복]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28.4)
▪[벧엘언약]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28.13b)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28.21a)
▪[밧단아람에서 하나님께서]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31.3)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31.1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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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공동체]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100 크시타에 샀으며”(33.18-19)
야곱은 20년 밧단아람 생활을 마치고 출생지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31.13b). 그래서 귀향길에 오른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야곱은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곳에 땅을 사고 정착한다(33.17-19). 이상하다. 땅은 이미 조상 아브라함에게서부터 하나님이 주시겠다 하셨다. 그런데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땅을 사고, 거기에 정착한다. 무엇인가 일이 어긋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조부 아브라함은 아버지 이삭의 배필, 즉 야곱의 어머니를 가나안의 딸로 맞을 수 없다는 분명한 신앙이 있었고, 이 생각은 아버지 이삭에게도 동일했다. 이것은 에서가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을 근심한 대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야곱 역시 부모님처럼 처자를 어머니 리브가가 살던 하란(밧단아람)에서 이루었다. 그런데 자신의 12 아들들은 형 에서처럼 가나안 한 복판에서 생활하고 정착하고 교류하는 생활 터전으로 몰아넣는다.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1)을 정도였다. 그만큼 거룩한 아브라함의 씨와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세겜이 같은 리듬으로 놀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환경과 상황과 분위기에서 그만 사건이 터진다. 딸 디나가 강단을 당하고 만다. 좁게는 한 딸의 인생이고, 넓게는 언약 백성의 미래와 연결된 뇌관이다.
하지만 야곱은 딸이 강간을 당했는데도 잠잠하다(5). 히위 족속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통해 죄는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온다. 이로써 언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후손과 땅’(9-10)이 하몰에 의해 주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언약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과연 야곱은 이 제안을 받음으로써 세속화될 것인가. 이로써 디나의 강간사건은 단순히 딸이 성폭행당한 것 그 이상인 것이 드러난다. 과연 벧엘을 거쳐 아버지 이삭이 살고 있는 자신의 출생지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가나안 땅 세겜에서 히위 족속이 주는 후손과 땅을 받아 하나님이 아닌 세겜을 하나님처럼 섬길 것인가.
우리 역시 야곱처럼 두 갈림길에 설 수 있다. 세상의 방정식인가, 하나님의 식인가. 얍복 나루라는 위대한 지점을 통과한 야곱치고는 실망스러운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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