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55찬양 | 데살로니가전서 맥잡기

55찬양 | 행17.1-15
•데살로니가전서 맥잡기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AD 50-52년) 때에 세워졌다. 빌립보에 이어 그곳에서 단지 3주일을 지내는 동안에 헬라인(이방인) 남녀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어 교회가 개척되었다(2.2, 3.1, 행17.1-4,13-15). 복음 -바울복음의 핵심은 고린도전서 15장이다- 은 흥왕하였으나 바울은 곧 대적자(유대인)들에 의해 추방되고(1.2-2.16, 행17.5-10), 이어 디모데를 파송하게 된다(3.2). 그러나 디모데가 바울에게 보고한 바에 의하면 데살로니가교회는 주의 재림에 대해서 뭔가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4.11,13-14).
복음과의 짧은 만남 때문이었는지 교회는 영적으로, 교리적으로 큰 혼란 가운데 있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이처럼 환난 중에 있었음은 물론이고(3.3-7), 임박한 재림에 대한 그릇된 이해 때문에 일상생활마저 흔들리는 사람들(4.11), 그리고 주의 재림 이전에 먼저 죽은(사별한) 자들의 장래에 대한 그릇된 이해들이 교회를 흔들리게 했다(4.13-18). 어찌할까.
데살로니가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분명한 복음 메시지였다. 이것이 데살로니가전서가 쓰여지게 된 하나의 배경이다. 이런 형편임에도 데살로니가교회는 건강했다(3.6). 그랬기에 바울과 데살로니가교회는 “형제들아!”(14회)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교제를 계속해서 나눌 수 있었다. 재림에 대한 복음은 저희를 바르게 깨어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바른 삶, 즉 성결한 생활을 낳게 될 것이다. 이것을 신뢰하면서 데살로니가전서를 묵상해 본다.

재림에 대한 소망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1.10a)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2.19)
*“예수께서 … 강림하실 때에 …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3.13a)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4.15)
“주께서 …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4.16a)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5.2)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 임하지 못하리니.”(5.4)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5.23b)
(*표는 원어에 parousia로 쓰임)

한편 그리스도의 재림은 마치 밤에 도적(盜賊)같이 임할 것이기에(5.2)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5.6)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물론 재림을 알리는 징조가 먼저 있다(마24.36,42, 25.13). 그러므로 초림(승천)과 재림 사이를 살아가는 성도들(‘나)에게 바울이 권면하는 7가지 종말론적인 삶을 무지개처럼 항상 내 영혼의 창에 걸어놓고 살아보자(5.16-22). 이것이 신학(교리)과 삶을 일치시키는 길이다.

성결한 생활
내일의 재림을 소망하는 자는 오늘의 삶을 적당하게 살지 않는다. 바른 재림신학(再臨神學)은 반드시 거룩한 생활로 그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한 바울의 꿈은 바로 거기까지 가 있다(3.13).
그럼 종말을 살아가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한 마디로 하나님을 향해서는 주님을 믿는 믿음에 기초한 거룩함(3.13, 4.3,7)이고, 사람(이웃)을 향해서는 사랑(3.12, 4.9-10)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재림을 기다리는 자는 마치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자들처럼 입술만 그럴 듯 할 게 아니라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4.11)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이렇듯 신앙은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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