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750새벽 | 맹세일기.盟誓日記(삿21.1-12)

750새벽 | 21.1-12

맹세일기(盟誓日記)

 

전쟁은 끝났지만 무엇보다 베냐민 지파는 50,100명이 죽고 겨우 600명이 남음으로써 한 지파가 이지러지고 말았다(20.35,46-48, 21.3). 이스라엘은 미스바 총회일기(20.1-11)에서 다음 두 가지 맹세 때문에 참으로 난감한 딜레마에 빠져서 통곡하고 있다(1,5).

 

[1]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1,7)

[2]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5)

 

[1] 첫 번째 맹세(1,7)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2) 또한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3) 그런데 언뜻 보면 이스라엘의 종교성과 태도가 그럴 듯 해 보인다(2). 하지만 진행되는 일련의 흐름이 모두 이스라엘의 ’()로 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스스로의 말(1)에 의한 역시 자신들의 말(3)로 이어지면서, 이 말에 대한 대안(해법)의 말 또한 스스로의 언행(言行)만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것이 본문 전체에 흐르는 하나의 맥()이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내면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죄의 비밀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가? 첫 단추(1)를 잘못 끼웠으면 깨끗하게 시인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도록, 그리하여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해야 할 피조물이 도리어 어찌하여”(3)라고 항변하고 있으니, 가나안 교회가 건강할 리 만무(萬無)하다. 끊임없는 자기 논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 그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2] 두 번째 맹세(5)

두 번째 맹세는 베냐민 지파의 탈신앙(脫信仰)을 암묵적으로 동조한 교회 안에 또 다른 불신 세력, 이들이 골리앗으로 자라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맹세가 어이없게도 첫 번째 맹세의 탈출구(脫出口)로 사용되고 있다. 가나안 교회 안에 독버섯처럼 자란 기브아 불량배들의 죄악(20.10,13)을 멸하기 위해 온 이스라엘이 다함께 참여한 것에 비해 길르앗 야베스에서는 한 사람도 진영에 이르러 총회에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니”(8b) 이들이 받는 징계야 뭐 그렇다 할 수 있겠지만,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무모했던 맹세를 지키기 위해, 그러니까 1절이라는 인간의 말 맹세를 위해 또 다른 인간의 말 맹세(5)가 도용된다.

그리고 길르앗 야베스 거민 가운데 젊은 처녀 400명만 남겨지고 나머지는 처참하게 죽는다(10-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 베냐민을 심판하셨다면 길르앗 야베스의 불참(不參)은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의도적으로 거역한 사사기적 불신인 셈이다. 그 결과 이들이 징계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이해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을 시행하는 이스라엘의 태도와 방법은 하나님과는 무관하게 사람의 맹세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된다.

 

안타까운 것은 본문에 하나님이 없다는 점이다. 인간의 독백과 그에 따른 인간의 해법만이 가나안 교회 안에 물결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다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에서 자행되는 죄악이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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