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747새벽 | 폭행일기.暴行日記(삿19.16-30)

747새벽 | 19.16-30

폭행일기(暴行日記)

 

밤새도록 새벽 미명(未明)”(25)

이 밤 역시 철저하게 이중적이다. 한 여인이 죽어나가고, 한 가정이 파국을 맞고 있다. 그러나 이 노인의 집 외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밤을 지나고 있고 아침을 맞는다(27).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올 때 남은 것이라고는 죽은 시체 하나 뿐이다. 밤은 죽음을 잉태했다. 그럼에도 아침이 되자 기브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하루가 시작된다.

사실 지금까지도 무수한 밤과 아침이 교차했었다. 치욕스러운 밤이 지나도, 그래도 태양은 떴다.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진행되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들은 점점 세상 속으로 깊숙하게 세속화되어 갔다. 가나안에 있으나 하나님이 부재중인 베냐민, 과거 야곱의 영광은 이미 빛바랜 지 오래고, 가나안 여부스 족속의 세속문화에 찌들대로 찌든 타락한 족속,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족속, 약속의 땅 한 모퉁이를 세상 사람들에게 다 넘겨주고 세상처럼 살아가는 족속, 불량배들(비류, 깡패, 건달)이 공개적으로 시위를 해도 누구 하나 눈물 흘리며 아파하는 사람 찾아볼 수 없는 족속, 그렇다면 이 패역한 족속을 향한 하나님의 개입이 어떤 식으로 시작될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사사기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읽어 온 독자로서는 긴장이 아니 될 수 없다.

 

기브아 사람들과 레위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자는 밤에 죄를 행하고 낮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이게 일상이었을 것이다- 잠잠하다. 한편 후자는 밤에는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25a)처럼 은밀히 죄에 가담한다. 그러나 이 일을 아는 여인은 이미 죽었고, 그는 지금 기브아를 떠나 자기 집에 와 있다. 그 밤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낮에는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12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29)와 같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이 일을 시작한다.

레위인은 기브아의 죄악을 모든 지파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이 일의 해결을 저들에게 요구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기브아 사람들과 일하는 방식만 달랐을 뿐 내가 보기에는 저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그의 모습은 분노와 증오와 선악(善惡)간의 심판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행해야 할 일(손에 칼을 들고 제물의 각을 뜨는 일)은 없고 자기 아내()12 토막으로 처리한다(29). 동시에, 한 노인의 처절한 독백(solo)19장의 흐름을 반전시키지 못한다. 절규하며 외치지만 듣는 자 없다. 이 외침은 레위인의 몫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침묵한다. 정말 말해야 할 때는 외면하고, 한 여인의 죽음 앞에서 조용히 회개하고 자성해야 할 때에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확대시킨다. 레위인의 죄는 안으로 잠복해 있고 기브아의 죄는 밖으로 드러난 것 밖에 차이가 없다. 레위인은 참 악질이다. 지능범이다. 19장은 이처럼 철저하게 이중 구조다.

과연 이 사건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그것을 보는 자가 다 가로되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30) 이제 두 당사자는 법정에 서게 될 것이다. 이어서 우리는 각자의 변론을 듣게 될 것이다. 마침내 저들의 일기(日記)가 읽혀지고, 평가를 받는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은 기브아의 죄를 그냥 묵과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행위록(行爲錄)에 대한 심판이 임박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일기(日記) 역시 재미로 읽혀지기 위해 기록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나의 일기 역시 이러한 하나님의 수순을 반드시 밟게 될 것이다. 다시 쓸 수 없고, 지울 수 없는, 다 찢어 버리고 새로 쓸 수 없고, 그래서 고장과 공사(수리)를 지금도 반복중인 처참한 나의 일기를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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