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646주일 | ‘약간’이 이럴 줄이야!(수11.16-23)

646주일 | 11.16-23

약간이 이럴 줄이야!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명령이 있다. 그 땅은 자연스럽게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수행을 통하여 얻게 되는 땅이다(26.5-11). 이 약속의 성취를 위해 여호수아 513절부터 시작된 가나안 정복은 마침내 1123절에서 마무리 된다: “그 땅에 전쟁에 그쳤더라”(23b) 사실 계속되는 정복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정복에 소요된 기간은 갈렙의 나이를 통해서 볼 때 대략 5년 이상 소요된 듯하다(14.7,10):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 지는 여러 날이라.”(11.18)

 

정복 마무리(16-20)

또 하나의 화근(21-23)

 

하지만 앞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은 가나안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바로 이 남았다는 약간때문이다. 그런데 미약하고 미미하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이 정도 때문에 소탐대실(小貪大失)할 필요가 있는가 싶어서다. 하지만 이거슨 중요하다. 왜 그런가. 이를 위해 민수기 33장의 도움을 받아보자:

 

    [민수기 33장의 담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50-51)?

       a.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고”(52)

       b.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깨뜨리며”(52)

       c. “산당을 헐고”(52)

       d. “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53).

 

    그러나 이어지는 또 하나의 명령이 있다: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55a)?

    “너희가 남겨둔 자가(55b)?

       a. “너희의 눈에 가시와”(55c)

       b.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55c)

       c.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55c)

       d.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56c)

 

약간이 골리앗일 줄이야!

 

그렇다면 가나안이라 하더라도, 가나안이라는 것만으로 안전지대가 아니다. 하나님이 무능해서인가? 이 역시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자 자기 백성이 정복한 곳 아닌가. 하지만 가나안은 만사형통을 보장한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니다.

완전정복에 조금씩 실패하는 것은 여호수아 후반부와, 여호수아서 이후가 왜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15.63, 17.12,13,16). 그 씨앗이 오늘 본문에 심겨졌고, 그것이 싹이 나고 자라 이스라엘 전체를 위협하는 거대한 세력으로 자란 것을 볼 때 그렇다. 결국 민수기 3350-56절의 성취인 것이다. 하나님이 염려하신 것이 현실이 된 셈이다.

놀라운 사실은 사무엘상 174절 이하에 보면, 약간이 골리앗으로 자랐다는 사실이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뺌이요.”(삼상17.4)

놀랍게도 오히려 역전되어 버리고 말았다. ‘약간남았던 가드의 씨앗이 이처럼 거대한 거인으로 자랐다니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집요하게도 가나안을 완전히 진멸할 것을 말씀하셨다(33.50-56, 7.16-21, 23.12-13).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4-15)

 

죄는 독버섯, 암세포, 미혹의 거짓 영과 같다. 화려하고 그럴듯한 향기까지 있지만, 그러나 그 버섯은 으로 가득하다. 또한 은 초기에는 발견되지 않고 또한 별다른 증상도 없으나 마치 누룩과 같이 세포에 퍼지면 급기야 생명을 앗아간다. 저수지 둑이 무너지는 것은 들쥐가 만들어 놓은 미세한 구멍 때문이거나, 시공할 때 섞인 조그마한 자갈(돌멩이) 사이에서 물이 새면서부터이다.

내 안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잠복해 있던 죄가 어느 날 어떤 사건이나 문제를 만났을 때 그것이 곧바로 왕노릇 하는 것을 목격할 때의 자책감과 무력감, 이것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날 동안 용기를 잃고 방황했던가. ‘약간은 이렇듯 치명적이다.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6.6-7)

 

일찍 핀 꽃은 그만큼 일찍 지는 법이다. 주님 없이 만들어 놓은 [‘약간남았더라의 더하기’]로는 더 이상 안 된다. 주님 없이 만들어 놓은 [‘가드덧셈 = 골리앗]이라는 불신앙으로는 곤란하다. 계속해서 애굽과 광야라는 옛 것의 잔머리를 가지고 가나안에서마저 재주 부리려는 광대 짓으로는 안 된다. 세상과 애굽에서는 통했을지 모르나 가나안(그리스도, 구원, 교회) 안에서는 안 된다. 서로 망하는 결과를 낳게 될 뿐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도 죄악의 꽃은 피듯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생활 가운데도 범죄는 계속되고 있음이 시리고 아플 뿐이다. 때문에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기에는 너무 연약한 존재임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을 수밖에 없다.

물론 전쟁에는 승리했고, 그리고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마침내 찾아온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평화와 축복이 인생의 성공을 끝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왜 그런가? ‘약간안에 들어있는 불순종 덧셈 때문이다. 보이는 전쟁은 멈추었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쟁이 그치고 가나안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던 그때로부터, 바로 그곳 안에서 가사’(약간)의 독초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 영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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