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897주일 | 천국은 말씀으로 세웁니다(마15.1-20).

897주일 | 15.1-20

천국은 말씀으로 세웁니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메시야)에 대한 예루살렘의 입장이 드러나는 순간이다(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앞서 바리새인들의 바알세불 사냥(12.22-37), 고향 사람들의 배척(13.53-58), 헤롯이라는 정치 권력(14.1-12)이 움직이더니, 이번에는 종교 권력까지 메시야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1-2).

 

 

사람의 전통: 고르반(Korban)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시비를 거는 것은 제자들이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2b)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소위 장로들의 유전(遺傳)을 제자들이 범했다는 자신들의 규정에 관한 문제다. 저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데 이때 씻을 물의 양과 질, 물을 채우는 방법, 씻는 손의 자세 등에 관한 상세한 규정을 만들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주님의 제자들이 이를 어겼다는 공격이다. 또 뭔가 꼬투리를 잡고 주님을 흔들어 보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이미 앞에서 예수를 죽이겠다는 것을 의논하던 무리들이었으니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12.14).

이처럼 바리새인들의 질문 속에 사악한 의도가 있음을 주께서 아셨다. 그래서 저들이 지금 2절에서 말하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렇기 때문에 3절에서 무엇인가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시작하신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3)

, 무엇이 문제인가. 예수님은 2절이 아니라 3절이라고 하신다. 제자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범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이 하나님의 계명보다 위에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씀합니다(4-6 참조). 이를 드러내기 위해 4-6절에서 예를 하나 드신다. 바로 고르반(Korban)이라는 전통입니다. 4-6절을 읽어보자.

저들은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5)라는 소위 고르반(Korban)이라 선언하기만 하면 부모 공경을 명하는 십계명, 그러니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는 유전 곧 전통을 만들었다. 이것은 그대로 지키느냐의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냥 단지 그렇게 선언하기만 하면 부모 공경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그 누구로부터도 정죄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임의로 만든 규정과 전통이라는 잣대로 메시야이신 예수님까지를 어찌 해 보려는 종교 귀족들의 당돌한 언행,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유감스럽게도 저들은 모르고 있다. 인간이 얼마나 맛이 갔으면 하나님의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보다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을 더 가치 있고 우선해야 할 법이라고 생각하게 되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나님마저도 자신들의 입맛에 들지 않으면 지켜야 할 우선순위와 가치라는 메뉴판까지도 마음대로 바꾸어 버리는 오만함,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픈 부분이다.

 

 

하나님의 계명(誡命): 말씀

 

    “네 부모를 공경하라.”(4a, 20.12, 5.16)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4b, 21.17, 20.9)

 

바리새인들은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을 최고요 부동의 자리에 놓았다. 때문에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4)일지라도 방해가 된다 싶으면 말씀까지도 자기들 마음대로 만들어 놓은 규정의 빛 아래서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단호하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3)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4a) 하셨는데 저들은 고르반(Korban)이라고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6a)라고 했다.

결국 저들의 입술은 그럴 듯 하지만 속마음은 아닌 것이다(8). 하나님의 계명은 사람의 계명으로 바뀐 지 오래지 않습니까(9). 이게 이사야에 의해 오래 전에 정곡을 찔려 말한 헛된 종교와 사기꾼들의 실상이다(7-9; 29.13): “이 사람들은 거창하게 말은 바로 한다만 그 속에 마음이 담겨 있지 않다. 그들은 나를 예배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진심으로 우러난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자기네 구미에 맞는 가르침을 위해 내 이름을 팔고 있을 뿐이다.”(The Message)

주님은 지금 저들의 외식(위선)을 책망하고 계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는 말의 의미들이다(6b). 그럴듯한 말로 경건한 삶을 위장하고 있지만 비로소 저들의 실체를 밝힐 때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의 입(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실제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11,18,20). 그럼 저들이 한 말은, 그리고 그 말의 배후에 있는 마음은 무엇인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19) 결국 장로들의 유전은 고르반의 예(case)에서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 같지도 않은 그럴듯한 언행심사(言行心事)를 통해 사람들을 고사시키는 범죄일 뿐이라 하신다.

, 그렇다면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겨야 할 이유가 있다. 헛된 전통들은 말하자면 원래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13)이기에 불현듯 모두 뽑아 버리실 것이다. 비록 저들이 주의 말씀을 듣고 분개하고 있다할지라도 상관없는 일이다(12,14a). 소경들의 행진곡이기 때문이다(14).

좀 안다 하는 사람들, 예루살렘을 무대로 활동한다는 종교꾼들, 하늘 높은 줄 모르고서 거짓말로 만들어진 장로들의 규정이라는 손바닥으로 주님의 말씀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저들은 소경이요, 사람을 더럽게 하는 자들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모리배들이 활개를 치며 살아간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잘못된 습관과 악행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그러니까 오늘 말씀의 적용으로 정리해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는 바리새인화 되어가는 것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아브라함에게서 그 답을 찾아본다: 그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는 이야기에 그 답이 있다. 히브리서 1117-19절이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11.17-19)

이번에는 이 말씀을 메시지 성경으로 읽어보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삭을 하나님께 다시 올려 드렸습니다. 그는 약속으로 받은 자신의 외아들을, 얻을 때와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돌려드렸습니다. 이 일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네 후손들이 이삭에게서 아놀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들은 뒤에 한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원하시면 죽은 사람도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 일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서 산 채로 돌려받을 때 일어난 것입니다.”(11.17-19, The Message

 

아브라함은 사람의 상식이나 통념, 무엇보다 사람 제사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이런저런 사람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친히 명하신 말씀에 복종한다. 우리는 전통이나 습관이나, 한국화된 신앙에 기대어 살지 않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따르는 자들은 오직 말씀을 믿고,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고, 묵묵히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것이 전통과 인습에 빠진 신앙에서 일어나 말씀과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의 길이다. 전통이라는 모래로 세우는 것을 포기하라. 말씀이라는 진리로 세우는 길을 멈추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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