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794주일 | 고통 vs 하나님, 그 사이에서(시13.1-6)

794주일 | 13.1-6

고통 vs 하나님, 그 사이에서

 

그는 원수의 계속되는 공세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다(3-4). 때문에 이 공포가 과연 어느 때까지계속될 것인가에 대해 하나님께 울부짖는다(1-2).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역설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고통 앞에 선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쁨과 찬송이다(5-6). 얼른 이해하기가 쉬지 않은 반전이다.

이렇듯 시인은 전혀 이질적인 두 모습 사이에서 고난의 파도를 타고 있다. 자신의 전반전은 두렵건대이지만 하나님이 행해 주실 후반전인 기쁨그 사이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찬송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원수들에 의해 두려워하고 있다. 동시에 원수들에게 포위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을 향한 찬송과 기쁨을 잃지 않는다. 이 요동치는 삶의 흐름을 어떻게, 무엇으로 넘어설 것인가.

 

두렵건대(1-4)

 

다윗은 원수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분리됨이라는 영적 고독에 몸부림친다. 그는 솔직하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볼 줄 알았고, 또한 이를 정직하게 진단할 줄도 알고 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즉 그분과의 멀어짐이라는 혼돈과 두려움이라는 관계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2a)

다윗은 지금 하나님 앞에 빈털터리이자 벌거숭이로 선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서 정직하게, 그러나 눈물 나도록 시리고 아픈 자신의 텅 빈 영혼을, 지금 자신의 상태가 영혼까지 피곤한 상태에 있음을 그대로 시인(노출)해 버린다. 감히 하나님께 무얼 숨길 수 있으랴! 한편 다윗으로 하여금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런 자신을 향한 원수의 기쁨 가득한 비아냥과 허풍스러운 참소다(2b,4): “내가 그를 이겼다!”(4a)

일이 이쯤 되면 보통 죽음을 생각하는데 다윗도 예외는 아니다(3). 이 때 그는 자신에게서는 사망의 잠이지만(3), 그것이 원수에게서는 실패에의 두려움이 한계상황으로 몰리게 된 주범(主帆)임을 직시한다(4). 그만큼 다윗은 과연 이 위험천만한 상황이 어느 때까지계속되어야 하는가에, 아니 결국은 그러지 않아야 함을 역설적이게도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지금 다윗은 허공에 대고 향방 없는 메아리처럼 쏘아대는, 말하자면 소위 고양이에게 몰린 쥐처럼 그냥 한 번 몸부림쳐 보는 그런 언행은 아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향해, 그분으로 말미암아 새 희망의 솟아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너져도 하나님 앞이고,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도 하나님 앞이고, 원수들의 표적이 되어 휘청거리고 있어도 변함없이 하나님 앞이다. 이게 다르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토해 내는 자기 울분과는 차원이 다른 이유다.

 

기뻐하리이다(5-6)

 

한 바탕 하나님 앞에서 눈물 콧물을 토해내고 나면 다음 두 가지로 영적 균형을 다시 잡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의 후반전이다. 첫째는, 자신의 한계를 훌훌 털고 일어난다. 그리고서 하나님을 다시 바라본다. 둘째는, 육체의 한계를 넘나든 자신을 보며 통곡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보며 기쁨과 찬송을 다시금 토해 낸다. 자신은 절망이지만 하나님은 소망인 것을 알고 믿어서다. 이렇듯 성도에게는 결코 절망이란 없다. 하나님을 믿는 것만큼이 이와같은 절대절망의 자리에서마저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절대희망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절망의 시대 속에서도 희망의 출구를 하늘로 삼고 살아가는 이유다.

이것이 전혀 상황이 바뀌지 않았어도 하나님 안에서 맛볼 수 있는 인생후반전이라는 기쁨과 찬송의 비밀이자 이유다. 자신을 보면 절망이지만 하나님을 보면 희망이니까. 이것이 다윗의 영성이다. 따라서 이 부분이 우리 역시 다윗이 될 수 있는 거역할 수 없는 희망이 자리하는 대목이다.

생각해 보면 달라진 것은 환경이나 상황이 아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서 있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마음과 생각의 방향이다. 이것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읽어내고 이해해 낼 수 있도록 그의 내면세계를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열어주기 때문이다. 이로써 마침내 인생전반전 두렵건대”(3-4)가 끝이 나고, “기뻐하리이다”(5)는 인생후반전으로 새롭게 역전되는 순간이다. 지금 다윗이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에게 주고자 하는 선물이 바로 이것이다.

 

고통과 고난의 파도 앞에 보인 전반전의 반응은 누구든 비슷하다(1-4). 그러나 시인이,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고 사는 자들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원수들의 도전을 역전시키는 후반전의 모습이다(5-6). 참으로 통쾌한 역전승(逆轉勝)이다. 이 아름다운 열매는 누구의 것인가. 그것은 원수들의 참소와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참고 견딤으로써 사태를 역전시킬 수 있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의 몫이다.

주님은 지금 이 이야기를 우리의 인생에도 허락하고 싶어 하신다. 문제는 자신이다. 우리 모두는 다 인생 전반전의 아슬아슬한 위기를 넘어, 이젠 인생 후반전의 역전을 온 몸으로 갈망하며 살아간다. 그럴수록 문제는 작아지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커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다윗처럼 끝까지 우리도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5a)기로 결정한다. 오늘은 이 조그마한 결정을 주님께 드린다. 비록 여전히 어느 때까지를 통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며 흔들리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꽃은 흔들리며 핀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 인생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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