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781주일 | 천국로(天國路)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마8.23-27)

781주일 | 8.23-27

천국로(天國路)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마태복음 8: 산상수훈 실전편

    B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1b)

       C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18)

    B' 제자들이 따랐더니(23)

       C'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28)

    B''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34)

 

풍랑에서 비롯된 문제 앞에 선 제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오늘 일어난 사건은 풍랑이 불어왔고, 이에 예수님이 명하시니 다시 잔잔하게 되었다. 이것인가. 혹은 예수 안에 있으면 문제를 만나지만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그럼 이것일까. 그냥 기적이고, 능력을 보여주신 게 전부이고 이 이야기가 하려는 메시지일까.

 

제자들의 현실: 천국로에도 풍랑은 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25)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4.38)

 

제자들(‘’) 역시 시련과 환난의 풍랑 앞에 노출되곤 한다. 제자들은 지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된 위기, 즉 시련을 만난 것이다. 제자들은 우리가 죽겠나이다”(25b)라고 벌벌 떨고 있다. 이것이 시련의 풍랑을 만난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물론 나라고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진단에 의하면 제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믿음 없음이었다. 풍랑과 믿음의 만남, 참으로 놀라운 영적 통찰(insight)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렇다면 주님은 시련의 풍랑 앞에 믿음으로 설 것을 교훈 하시는 것 아닌가. 어쩌면 이것을 위해 풍랑 이는 바다 위에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해답: 천국로의 풍랑은 믿음으로 이긴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26a)

 

사실 예수님도 배에 오르셨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묵상이다. 주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이 배가 잠시 후 어떤 일을 만날지 아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풍랑을 만나 좌초할지도 모르는 배에 오르셨다. 이뿐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아셨다. 하지만 예루살렘으로, 골고다로 가신다. 정면돌파이자 정면승부다. 고통과 수난과 죽음과 모욕과 멸시와 비난이라는 풍랑이 있는 그곳으로 가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다. 오늘도 그렇다. ‘건너편’(18,28)으로 가시기 위해 풍랑이 일어날 그곳으로 가시는 길을 포기하지 않고 그 풍랑 앞에 정면으로 서신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2-33)

 

사실 풍랑에 대한 공포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본문의 핵심이다. 제자들의 문제는 풍랑 속에서 믿음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믿음이 없었으며, 그랬기에 그 믿음을 활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믿음은 능력으로 역사 되지 못하였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26)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4.40)

 

믿음은 풍랑을 이긴다. 풍랑을 정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이 믿음의 선물을 구하자. 그러므로 내 힘과 지혜와 능력 밖에 있는 문제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믿음 방정식이라는 해법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 방식은 언제나 뺄셈(-)부터 시작하신다. 풍랑 앞에 믿음의 무게를 달아보신다. 그러므로 시련의 풍랑이 밀려오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번에는 어떤 복을 주시려고 이러시는 걸까?” 그러면서 가슴이 막 뛰어야 한다. 설래임과 기대로 말이다.

이처럼 사탄이 꼼짝 못하도록, 그래서 , 안되겠다. 이 친구에게는 항복이다!” 이렇게 사탄이 패배를 선언하도록 말이다. 나에게는 이 풍랑을 이겨낼 믿음이 있는지, 우리 가정은 또 어떤 모습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것이 그대로 기도제목이 된다. 문제는 기도를 낳았지만 기도는 그 문제를 해결한다.

이젠 제발 세상방정식을 동원해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자. 가까이에서 가족들이 보고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동자로 보고 계시니까. 내가 흔들리면 훗날 가족들 역시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풍랑을 만나면 내가 했던 방식대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이쯤 되면 영적 권위가 전혀 통하지 않게 된다.

가족들은 이렇게 생각하겠지: “결국 가장 결정적일 때는 기도가 아니구나. 하나님도 아니구나. 믿음이 아니라 돈으로 해결하는구나. 그러면 교회에 갈 이유가 없지. 이로써 교회 졸업이다.” 그래서 가족을 보면서 나를 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고, 혼자 교회 일 다 하는 것 같아도 나의 영적 권위가 가족들에게 무시되고 있다면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니올시다이다.

풍랑(파도)이 일어야 파도타기를 할 수 있다.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과 또 파도냐고 하는 사람은 다르다. 파도는 내 의지와 기대와 시간에 상관없이 찾아온다. 평안하다고 풍랑이 영영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불고 번개가 친다고 해서 반드시 파도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풍랑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풍랑이 계속되는 것 역시 아니다. 풍랑이 있으면 또 잔잔한 평화가 있고, 평안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라는 항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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