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376주일 | 복음, 고린도를 살리다!(행18.1-17)

1376주일 | 18.1-17

복음, 고린도를 살리다!

 

바울의 생애는 그 자체가 고난행전’(9.15-16)이다. 복음과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고난 예고는 첫 부르심을 받을 때에 이미 시작되었다. 한편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던 기간이 모든 면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것 같다(고전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이어서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전도 여정을 이와 동일하게 간증한다(고후11.23b-27). 이 바울에게 복음은 무엇이고, 그와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동시에 이런 배경에서 세워지고 있는 고린도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이런 형편 중에도 바울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고린도 진행형1: 아덴 고린도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133.1)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10a)

 

    [고린도의 그리스도인]: 고린도를 살리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2)

    ∙바울(1)

    ∙실라와 디모데(5)

    ∙디도 유스도(7)

    ∙회당장 그리스보의 온 집안(8)

    ∙내 백성(10)

         ↔

              [대적하고 비방]: 복음을 거부하다.

              ∙회당에 모인 유대인과 헬라인(4-6)

              ∙아가야 법정에 모인 유대인(12)

 

이 시기에 로마 고린도로 바울보다 먼저 내려온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의 만남 이 시작되었다(2). 이때부터 이들 부부는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고(16.3), 고린도 에베소로 이어지는 전도여행에 동행했으며(18.18), 바울이 에베소 안디옥으로 갈 때 이들을 에베소에 머물러 있게 함으로써 아볼로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개하는 일과(19-28), 후에 자기 집에서 교회를 시작할 정도로 헌신하게 된다(고전16.19). 참으로 신실한 부부다. 박해 때문에 로마 고린도 에베소로 이어지는 나그네 행로(行路)였지만 하나님과 주님의 교회와 복음을 위해 전심전력(全心全力)으로 헌신한 이들에게서 성도의 아름다운 모델(model)과 팀 사역의 복됨을 만난다.

그 와중에서도 복음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간다. 유대인을 향한 바울의 분노는 고린도에 대한 더 적극적인 전도를 낳았고(7), 그 결과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8)고 하는 놀라운 역사가 고린도교회를 건강하게 세워지도록 만든다. 고난과 핍박과 어려움이라는 대가를 지불했을 때 하나님은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이 척박한 고린도 땅에 당신의 아름다운 고린도교회를 세우신다.

아름다운 동역만 있는 게 아니다. 복음이 가는 길에 유대인들의 훼방이 어찌 기다리고 있지 않았으랴(6). 참으로 사탄의 방해는 집요하다. 바울을 공격하더니 이번에도 유대인을 부추기는 수법을 동원한다. 좀 나아지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유대인들의 핍박은 계속된다(12-16).

 

 

고린도 진행형2: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9-10)

 

왜 주께서 환상 가운데 고린도에 있는 바울에게 찾아 오셨을까?(9) 유대인들이 대적하여 비방’(6)하는 것도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편이었다- 이어지는 7-8절에는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8b)고 했다. 그런데 유독 고린도에서만 9-10절처럼 특별한 위로와 격려를 하셔야만 하는 무슨 이유라도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이유가 16개월 동안의 평안함이 새 총독이 부임하는 것과 섞이면서 심상치 않은 흐름으로 전개되는 지점에서 조금이나마 밝혀진다. 그리고 계속되는 전도여행에 심신이 극도로 지쳐 있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참으로 놀라운 우리 주님의 위로였다: “두려워하지 말며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9b-10a) 무슨 말씀인가. 바울 너는 혼자가 아니라 하신다. 주께서 바울이 가는 곳마다 함께 가셨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바울 곁에 계신다 하신다. 그리고 고린도를 향한 하나님의 꿈을 보여주신다. 고린도의 미래는 대적의 해로움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서 마침내 하나님의 백성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환상을 공개하신다. 비록 현재는 고난의 연속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십자가의 복음을 고난을 먹고 자라 마침내 고린도 성 중에 하나님 당신의 내 백성’(10b)으로 채우실 것을 언약하신다.

그래서 그랬을까, 바울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오랫동안인 16개월 동안이나 이곳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11). 짧지 않은 기간이다. 비록 끊이지 않는 문제들을 안고 있었지만 바울은 저들을 향해 성도’(聖徒, 고전1.2)라 부르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도 고린도에 있을 때 -그는 초신자가 아니라 이미 위대한 사도다.-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고전2.3)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도 연약한 자리에 처해 보았다. 이처럼 그 연약함으로 두려워 떨며 살아가야 했던 바로 그곳에서도 십자가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체득하였던 것이다(고전1.26-2.5).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b-27)

 

우리 역시 바울처럼 살아가야 하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정말이다. ‘바울짜리가 되기에는 이미 많은 부분 부끄러워져 버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사도권이 도전 받고 있는 때에도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으로 살 수 있었던 바울에게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또 하나의 신앙좌표를 발견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비록 모든 것이 잘 될 때가 아니라 어둡고 칙칙한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 갈 때를 살아가더라도 주님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 삶의 균형을 잡고 아무 희망 없어 보이는 흔적들을 주님보다 앞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면, ‘바울처럼은 한 번 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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