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새벽 | 눅12.35-48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아무리 많은 복을 받아도 종이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복이란 하나님이 주인이시요, 우리는 그의 종이라는 철저한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종은 복을 ‘주는’ 자가 아니라, 주인으로부터 복을 ‘받는’ 자이다. 종은 복을 만드는 자가 아니다. ‘복’은 언제나 주인의 몫(소유)이며, 그것이 종에게 수여되는 한에 있어서만 종의 것이 된다. 종이 아무리 복을 많이 받아도 그가 주인의 자리에 등극하는 것은 아니다.
1. 주인과 종은 각각 누구인가?
주인은 재림하실 예수님을 가리키고, 종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참여한(할) 우리 성도들을 가리킨다. 주인은 주인의 것을 맡아 관리할 청지기를 찾으신다(42). 주인은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다. 주인의 마음에 합한 종에게 복을 주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맡기는 분이다(43-44). 또한 생각지 않은 날에 오는 분이다(46). 뿐만 아니라 종이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한 종을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는 분이다(45-46). 이처럼 주인의 뜻을 행치 아니한 종을 맡긴 차등에 따라 각각 벌과, 상을 내리시는 분이다(47-48).
그럼 종은 누구인가? 오직 주인을 섬기는 자다. 그는 주인이 찾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다(42). 또한 주인의 집의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다(42). 뿐만 아니라 주인의 올 때를 자기 마음대로 “더디 오리라” 생각하지 않는 자다(45). 이렇듯 주인의 뜻을 알고 예비하는 종이다(47). 그렇다면 종이 받는 복은 어떤 복인가?: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44)
2. 주인이 ‘이를 때’와 종의 ‘맞을 때’는 단절되어 있지 않고 연속적이다.
주인이 오기 전까지의 행한 일들이 주인이 온 이후의 모습을 결정한다. 종의 정체(identity, 모습)를 갈라놓은 분기(전환)점은 ‘주인의 옴’이다. 이것은 종의 손(능력, 영역)에 있지 않다. 그 주도권은 언제나 주인의 몫이다. 따라서 종은 예비(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주인의 옴을 행복하게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복 있는 종인가. 주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항상 깨어서 주인의 오심을 예비하는 충성스런 청지기(종)처럼 주인이신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한다. 문제는 주님이 생각하지 못한 때에 오신다고 하신다. 따라서 주인이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주인의 오심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히려 주인이 맡긴 ‘청지기’(42)로서의 소명을 망각하고 자기 이득을 취하는 것으로 불충한다면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45-46).
주인의 명령과 이를 통해 맡은 종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종이 주인과 상관없는 뜻을 품고, 주인의 말씀을 벗어난 행동을 일삼는 종은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46a) 그를 심판하실 것이다. 다시 오실 주님의 때가 가까이 왔다. 그날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주님 다시 오실 그때까지 통하지 않는 잔머리(꼼수, 편법) 동원하지 말고, 종이자 청지기로서의 맡은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이 재림을 영광스럽게 맞을 수 있는 길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