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0새벽 | 눅24.13-35
엠마오 페스티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13-32)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나타나 말씀하심에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면(15-16), 그렇다면 과연 초대교회는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믿고, 그분을 체험할 수 있었을까. 모두가 다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나야만 그분의 부활을 믿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대면하지 못한다할지라도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먼저, 두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에 고백한 것 가운데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32)는 저들의 고백이다. 주의 말씀이 가르쳐지고 선포될 때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느낀다. 또한,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30)는 순간이다. 이처럼 성찬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현존을 느낀다. 믿음 없는 자들도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리고 성찬을 함께 나누면 눈이 열리고 주님을 알아보게 되다니 신기하고 놀랍다.
다시 예루살렘으로(33-35)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곧바로 가던 길을 돌려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거기에는 사도들과 그 동료들이 함께 모여 있었고, 베드로도 이미 부활의 주님을 만난 뒤였다(34). 아마도 예루살렘의 어느 한 곳에 이미 부활의 주님에 대한 소식을 천사들로부터 들은 ‘그 여자들’(1,8), 부활의 주님을 만난 베드로(34, 고전15.3-7), 그리고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에 주님을 만난 두 제자들과 사도들의 동료들이 모여 있었던 것 같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체포되던 날 다 주를 버리고 흩어졌던 제자들이(막14.50) 어느 틈에 다시 예루살렘에 모여서 요 며칠 동안 이곳저곳(이사람 저사람)에서 모아지는 부활의 소식들을 듣고 있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26)는 주의 말씀처럼 마침내 ‘영광’의 때가 임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
주님의 책망의 초점은 저들의 ‘믿음 없음’이다. 하지만 주님은 여기서 끝나지 않으시고 저들의 믿음 없음이 믿음 있음으로 바뀌도록 말씀으로 저희들을 섬겨주신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27) 구약은 오실 메시야를 내다보고 있고, 신약은 오신 메시야를 증거(확증)한다. 지금 주님은 구약과 신약을 이처럼 보도록 복음의 빛에 비추어 가르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