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도회

1131수요 | 부르심, 하늘문이 열려야 합니다.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3-07-12
성경본문
이사야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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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개역개정판에서 가져옴

 

1131수요 | 6.1-13

부르심, 하늘문이 열려야 합니다.

  

유다 웃시야 왕이 죽든 해에 이사야가 선지자로의 소명을 받는 장면이다. 역대하 26장에 의하면 웃시야는 그의 통치 초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을 구하였다(4-5a):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5b) 때문에 그는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이 도우사”(7a)- 견고한 나라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말년에 교만함 때문에 화를 자초한 비극적인 왕이었다: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16)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문둥병에 걸려 죽을 때까지 별궁에 거하였다(17-23).

 

() - 주 하나님을 보았다(1-4).

국상(國喪)이 나고 왕이 교체되는, 이 모든 것은 죄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되고 집행되는 그야말로 혼돈의 상황이다. 이 때 이사야는 하늘 문이 열리는 천상의 어전(御殿, 보좌)을 보는 것으로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는다. 그렇다면 아무리 어두운 절망의 시간일지라도 분명 소망아닌가. 이것은 은혜다. 여기서 인간 세상과 천상의 가장 대조적인 모습이 바로 거룩이다. 결국 하나님이 이사야를 부르신 것은 당신의 거룩이 유다 안에 다시 회복되기를 원하신 것이다.

 

() - 자신을 보았다(5-7).

하나님의 거룩에 비춰지자 이사야는 자신의 내면(속사람)의 죄를 보았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는 처절할 정도의 자기 부정의 고백이 뒤따른다. 그럼 이처럼 절망으로 끝인가. 아니다.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7b) 이렇듯 은혜는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 행위, 도덕, 윤리, 선함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때, 바로 그때에 자신이 누구인가를 비로소 안다.

 

() - 사명을 보았다(8-13).

하나님은 죄인을 쓰시지 않고 그를 새롭게 고쳐서 쓰신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고 싶으시면 때로 기다리고, 슬쩍 손가락으로 밀어 보기도 하고, 옆구리 콕콕 찔러 보고, 외곽부터 서서히 좁혀 오시기도 하고,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직접 손을 대시기도 한다. 그런 후에 비로소 부르신다. 그리고 응답한다.

 

이사야는 위를 보게 되는 은혜를 입자, 마침내 자신이 보게 된다. 자신이 보이자 놀랍게도 드디어 밖이 보였다(8b)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하나님! 부족하지만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쓰시려거든 쓰시옵소서. 나를 드립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은혜 받은 자, 하나님을 만난 자,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자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요, 그리하여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알고,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 그런 그가 진실로 대답하는 말이 이것이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지 않겠나이다. 이 세상의 것들을 위해서 살지 않겠나이다. 썩어질 육신의 것을 위해 살지 않겠나이다.”

마침내 하나님은 내가 살아가는 곳이 소명이 되도록 하신다. 믿지 않는 시댁(친정)으로, 믿지 않는 남편에게, 하늘문이 열려야 할 그곳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신다. 그 한 사람이 바로 나라고 믿어야 한다. 마치 죄와 심판의 대상인 유다에 이사야를 보내시는 것처럼 말이다. 이 일은 하늘문이 열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내 하늘문은 열렸는가. 그럻다면 나는 소명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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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풍요 속에서도 청지기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치 못하고, 고난 중에 만물을 통치하시는 주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죄(잠 30:8)를 회개합니다. 죽어가는 이웃들과 동포들을 외면하고,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흘린 순교의 피와 기도의 눈물을 기억하고, 이제 우리가 북한 동포들을 살리고, 남과 북이 손에 손을 맞잡고, 열방을 향해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그 날을 앞당기게 하옵소서.

    08 한국교회가 일제강점기 때는 신사참배라는 우상숭배를 저질렀으며, 동족상잔의 비극 가운데 미움과 다툼과 분열을 퍼트렸습니다. 경제적 발전과 민주화 속에서 물신 숭배와 인간의 이성과 지성을 맹신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능력보다는 사람의 영향력을 기대고, 말씀과 제자의 삶보다는 세상의 인정과 안락한 삶을 더욱 추구하였던 죄악을 저질렀음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모든 우상을 타파하여 주옵소서.

    09 한국교회가 온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지 못하고 개교회주의에 빠져 분열과 다툼과 미워하는 모습을 보여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빛과 소금으로 부르신 주님 앞에서 다시 하나기 원하오니, 회개의 영을 부어주사 마음을 찢고 자복하여 하나 되기를 힘쓰는 한국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10 한국교회가 비둘기같이 순결하지도 뱀처럼 지혜롭지도 못하였습니다. 세속적 사고방식으로 한반도를 바라보며, 이념과 사상에 치우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였음을 회개합니다. 이제는 깨어서 기도하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를 향한 온전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파수꾼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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