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4수요 | 시57.1-11
고난 당하는 자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을 때에(삼상24.1-7)
동굴에서 벌어지는 일
쫓는 사울과 쫓기는 다윗이 외나무 다리와 같은 동굴에서 만난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을 때에 사울과 다윗이 그 안에 함께 있게 되는 상황을 두고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를 다윗은 알지만 사울은 모르고서다. 더 큰 그림에서 보자면, 이때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사사롭게 처리하지 않고 있으나, 사울은 기름부음을 받아 왕으로 예선(준비)된 다윗을 제거하려고 하는 중이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의 섭리에 반한 일을 거침없이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사람의 언행에서 이 점은 점점 더 분명해진다.
구원(1-5): “주께로 … 피하리이다”(1)
사무엘상 24장이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둘 중에 더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쪽은 다윗이 아니라 오히려 사울이었다. 물론 동굴 안에 갇힌 자는 다윗이다. 이를 사울과 그의 군사들이 알게 되었다면 다윗은 독 안에 든 쥐처럼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묘하게 진행된다. 사울이 용무를 보기 위해 가만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옷자락을 가만히 자를 만큼이었다는 것은 최고조의 위기를 느끼게 한다. 그랬다. 이쯤이면 다윗의 군사들이 사울의 목을 밸 수 있었다. 문제는 다윗이 그리하고 싶지 않았음이다. 어찌보면 첫 번째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 그 예고가 생각보다 빠르고도 자연스럽게 성취되는 순간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름부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듯이 왕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칼이나 인력으로 이를 찬탈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였던 것이다.
이런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도 다윗은 하나님께로 피한다(1). 즉 기도한다(2).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믿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3). 하나님만으로 충만한 자는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두드린다.
찬양(6-11): “주께 감사하오며 … 찬송하리이다.”(9)
다윗의 간증이다(6): ‘사울은 자신이 친 그물에, 자신이 판 웅덩이에 빠졌다.’ 하나님이 막으시면 닫을 자 없고, 하나님이 여시면 막을 자 없다. 바로 이 부분에 다윗의 찬양이 자리한다. 그는 자신의 승리를 자화자찬하지 않는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승리임을 알았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윗은 이기는 것이 목표인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식’대로 살아가는 것을 근본으로 삼은 자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는 일에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일하시는 것에 응답함으로써, 이를 위해 자신이 방해(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고 가치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실행하는 자였다. 그러니 승리했다고 우쭐할 이유도 없고, 일이 잘 된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결국 자기의 목표와 야망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끌어드리며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적당한 명분으로 합리화(포장)하면서다. 결국 자기 잘 되고, 성공하고, 꿈을 이루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감스럽게도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이용하기에 바쁜 사울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에 분주한 다윗에게서 그려지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