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새벽 | 고전14.26-40
예배하기가 우선한다.
규칙대로(26-33)
바울은 다름 아닌 예배(모일 때)에서 행하는 순서들이 자칫 각종 은사들의 경연장이 되는 것을 가장 우려했다. 초대교회가 ‘모일 때’(예배)는 어떤 분위기였을까. 좋은 예배는 모인 ‘모든 사람’(31)이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만들어진다. 각 사람의 은사는 공동체(교회)를 세우는 것과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26,33,40).
이렇듯 모든 은사는 각 성도들이 공동체로 모일 때 덕과 질서(화평)를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이로써 고린도교회가 예배의 혼란(33)을 하루 빨리 떨쳐버리기를 기대했다. 교회(예배)는 하나님께 하는 것(방언, 26-28)과 사람에게 하는 것(예언, 29-33),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예배 순서들(26)이 결국은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40)라고 하는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먼저 방언은 2-3명이 순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을 해야 하는데, 이때 만일 통역자가 없으면 방언하는 자는 교회(예배)에서는 잠잠하고 혼자서 또 하나님과만 해야 한다(27-28). 또한 예언은 2-3명이 말하도록 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영들 분별함, 12.10, 요일4.1 참조)하도록 하는데(29), 이때 다른 사람에게 계시가 내려지면 먼저 하던 사람은 잠잠해야 한다(30).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지러움(무질서)이 아닌 평화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33). 계속해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현재 상태인 무질서의 이미지(7-“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8-“분명하지 못한”, 9-“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1-“외국인이 되고”)를 부각시킴으로써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가 평화 가운데 질서를 세워가기를 기대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한다.
여인들을 위한 규칙(34-35)
결론적 지시(36-40)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34a)는 [여성지침]은 난해한 구절이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잠잠하라!’는 지침은 여자들에만 명하고 있지 않다. 방언도 통역이 없으면 잠잠해야 하고(28), 예언도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을 때 먼저 예언하던 자도 잠잠해야 한다(30).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소위 방언파와 예언파가 공히 바울의 편지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해(해석)함으로써 오히려 또 다른 불씨를 제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한다. 그래서 비록 예언하기가 방언하기보다 더 강조되는 은사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은사지침]에 충실한 방언 역시 그 누구도 금하지 말아야 함을 다시 강조한다(39). 어찌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람이 막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둘은 공히 교회(예배)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사이기에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40)는 大원칙이 결론적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교회 안에서의 은사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공통적인 현상이다. 소위 은사 ‘이용해먹기’(경쟁하기, 사유화하기, 도약판삼기)의 백태는 더 이상 새로운 가십(gossip)이 아닌지 오래다. 그렇다고 정상적이고 하나님이 지금도 나눠주시는 은사를 백안시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은사주의자들만큼이나 무서운 사탄의 노림수다.
바울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교회(예배) 안에 주신 은사들이 바르게 사용되기를 갈망한다. 주께서는 은사에 대한 ‘열망’(1,39)을 넘어 적극적으로 ‘구하라’(기도하라, 12,13)고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