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새벽 | 사34.1-17
에돔: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날이 온다.
“이 때가 바로, 주께서 복수하시는 날이니,
시온을 구하여 주시고 대적을 파멸시키시는 해,
보상하여 주시는 해이다.”(8, 표준새번역)
선(善)과 악(惡)은 세상 끝 날까지 공존한다. 인간은 악을 택했고, 하지만 하나님은 선의 손을 들어주심으로써 심판(에돔, 34장)과 영광(야곱, 35장)의 접속곡을 홀로 주도하신다. 악을 대표하는 에돔의 코드는 단조(短調)이고, 선을 대표하는 유다의 코드는 장조(長調)다. 세상에는 언제나 이 두 음악이 흐른다. 이사야는 지금 전혀 다른 두 멜로디를 들려줌으로써 이미 시작된 성도들의 인생이라는 악보가 무엇으로 채워져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고, 어느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는가?
“여호와의 칼이 … 에돔 위에 내려며
진멸하기로 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5)
심판이 보편(우주)적인 것은 “열국이여 … 민족들이여 … 땅에 … 세계와 … 열방을 … 만군을 … 하늘의 만상이 … 하늘들이”(1-4)라는 표현처럼 그 대상에서 확인된다. 이처럼 사람은 물론 천지만물(天地萬物) 모두가 다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따라서 에돔은 심판 아래 있는 열방의 대표다.
또한 “진노하시며 …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육 당하게 하셨은즉 …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 말리되 … 여호와의 칼이 … 큰 살육이 … 여호와의 보복하시는 날이요”(2-8)에서 그 실상을 짐작하게 된다. 이 일은 무엇보다 하나님에 의해 친히 주도된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2,5,6,8,16-17). 하나님은 온 우주의 심판주(審判主)이시다.
이렇듯 예고된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다. 그러나 이 종말론적 심판은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 세세에 … 영영히”(10), 그리고 “아무도”(12) 이 심판을 역전시키지 못한다. 다시 기회가 또 있는 것이 아니고 최종적이라는 뜻이다. 좀 정리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왜 ‘에돔’(5,9,10)을 겨냥하고 있는가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 에돔이 거론되는 것은 우주적이며 보편적인 심판의 대명사로 쓰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에돔은 에서의 별명이자 그의 후손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창25.10, 36.1- ). 이삭의 두 아들, 에서(5,8)와 야곱(1.8-9, 4.3, 6.13, 10.20-23, 11.11-12,16, 17.5-6, 28.5-6, 30.17)은 이로써 전혀 다른 두 길을 걷게 되었다.
다음은 발람의 예언이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 다 멸하리로다.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민24.17-19) 참으로 가슴 뛰는 일이다. 아브라함 → 이삭으로 이어지는 구속사의 계보에서 에서처럼(34장), 그리고 야곱처럼(35장)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는 점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