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주일 | 사33.1-24
하나님의 꿈: “내가 이제 일어나며 …”
이스라엘은 지금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 상황이다. 앗수르의 제2차 침입에 의해 성읍들은 함락되고 예루살렘은 포위되었다(1,7-9, 왕하18.13-17, 사36.1).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야는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1-9). 마침내 앗수르에 대한 심판 선언(10-12)이 이어진다. 하나님은 멸망의 고통 가운데서도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며(15-16), 바로 그들에게 새 예루살렘을 약속하신다(17-24).
이사야의 기도(1-9) - 여호와여!
하나님의 응답(10-16) - 여호와께서
학대와 속이는 자인 앗수르(1)가 커 보일수록 이사야는 그것을 기도 앞으로 가지고 간다(2-9). ‘여호와여!’(2a)로 시작된 기도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10a)로, 그러니까 하나님의 응답으로 이어진다. 사실 앗수르의 심판 예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10.5-19, 30.27-33). 마침내 저들의 교만은 꺾일 때가 임박하였다(36.18-20, 37.10-13).
중요한 것은 이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만큼 주께 맡기며, 이를 시인함과 아울러 주께 간구하는 것이다(2). 하나님의 개입하심만이 희망임을 애타게 외칠 수 있는 사람,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다(3). 이사야는 기도 안에서 하나님이 일어나 싸우심으로 인하여 이미 대적들이 “도망하며 … 흩어졌나이다”(3)라고, 그 결과 승리했음을 보고 있다(4).
그래서 하나님의 승리를 찬양해 버린다(5-6). 이와 같은 평안과 구원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비롯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앗수르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황폐함에 처한 것이 유다의 현실이다(7-9). 이런 극명한 대조를 통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복과 저주 가운데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결단하도록 촉구한다.
마침내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신다. 희망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제는 내가 활동을 시작하겠다. 이제는 내가 일어나서, 나의 권능이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 보이겠다.”(10, 표준새번역) 이렇게 해서 앗수르에 대한 이사야의 기도는 그대로 응답된다(1,3-4,7-9 → 10-13). 물론 시온의 ‘죄인들’(14) 역시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그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들 편이시기 때문이다(15-16).
새 예루살렘(17-24)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시작된 이사야의 기도(1-6)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패망케 하심으로 유다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으로 일단락 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될 것인가?(20-24) 하나님은 그것을 이스라엘의 눈에 보이실 것이다(20). 무엇을 말인가? 그것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절기의 시온성을 보라. 네 눈이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20a).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한마디로 ‘임마누엘’의 축복이다. 이 말씀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것이다.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20b)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20c)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 할 것이며.”(20d)
“여호와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2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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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재판장이시요.”(22, 제사장)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22, 선지자)
“우리의 왕이시니”(22, 왕)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22, 메시야)
이 큰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은 회복된 예루살렘 “거기에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21a)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이 크신 일을 이루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22)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나’)로부터 이처럼 일컬어지시기를 소망하신다. 하나님을 이처럼 부르며, 믿으며, 의지하며,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