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9수요 | 삼하22.1-25
다윗,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시편 18편 표제어, 1)
사무엘하 22장은 시편 18편은 동일하다. 다윗은 자신의 지나온 일생을 돌아보는 일종의 회고록 같은 간증시를 토해낸다. 그에게 이 찬양이 고백되기까지의 지난 세월들은 이것과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었다(3-6: 원수들, 사망의 줄, 불의의 창수, 스올의 줄, 사망의 올무, 환난).
놀라운 것은 바로 ‘나’의 하나님과 다윗의 ‘그때’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환난 중에서”, 바로 그 와중에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6a)고 하나님은 응답하셨다(6b-7). 놀라운 것은 다윗은 과거의 추억만이 아닌 오늘도 생생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힘을 찬양하고 있다는 점이다(1-3).
구원의 하나님(1-25):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하나님이 하셨나이다!
[하나님](9-16)
▪“하늘을 … 바람 날개 위에”(10-11)
▪“흑암(물, 구름)…으로 둘린 장막을 삼으심이여”(12)
▪“숯불이 피었도다 … 하늘에서 우렛소리를”(13-14)
▪“화살을 날려 … 번개로 무찌르셨도다.”(15)
→ [나](다윗, 17-20)
▪“붙드심이여 … 건져내셨도다.”(17)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18)
▪“그들이 …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19)
▪“인도하시고 … 구원하셨도다.”(20)
그렇다면 왜 하나님 → 나(다윗)인가? 다윗의 간증을 들어보자. 다윗은 사울이라는 원수의 손에 포위되었을 바로 ‘그때’에, 그러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환난 중에서”, 바로 그 와중에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 나의 부르짖”(7)었다. 그렇다. 그는 하나님만이 힘되심을 믿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았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응답하셨다(7b-8).
[다윗행전](21-25)
A/21 “여호와께서 내 공의 …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
X1/22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
X2/23 “모든 법도 … 규례를 버리지 아니”
X3/24 “그의 앞에 완전하여 … 죄악을 피하였나니”
A’/25 “여호와께서 내 의 …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다윗이 1절처럼 자신을 찬양과 고백에 담아 주께 올려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다윗을 붙잡아 주셨기 때문이다(9-16 → 17-20). 그럼 어떤 다윗인가. 보이는 다윗이기까지 ‘보이지 않는 다윗’(X1)이 비로소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모든 것이 평안하고, 형통하고, 평화와 안전감에 붙들려 있을 때가 아니다. 그는 사울이 자신의 목숨을 사냥하고자 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생사의 갈림길을 살아가는 때였다. 이러한 때에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첫째,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X1)하였나이다.
둘째, “모든 법도 … 규례를 버리지 아니”(X2)하였나이다.
셋째, “그의 앞에 완전하여 … 죄악에서 피하였나”(X3)이다.
보이는 사울의 포위망 앞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녹녹하지 할 수 없는 일이다. 입술로도 어려운 일인데 실전이라는 전쟁터의 생사의 길목에서 온 몸과 마음과 삶으로 토해내는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라서 그렇다.
사울: 사악한 자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18) / 하나님을 떠난 악(22)
모든 법도와 규례를 버린 자(23) / 사악한 자(27) / 교만한 자(28)
→ 하나님: 붙드시고, 건져내시다(17)
인도하시고, 구원하시다(20)
다윗: 깨끗한 자
공의(21a,25a) / 깨끗한 손(21b,25b) / 도를 지킴(22)
자비한 자(26) / 완전하 자(26) / 깨끗한 자(27)
→ 29절: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사울왕가의 몰락에 대한 다윗의 시각이 강렬하게 그려진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공의신학(公義神學)을 절묘하게 반영시킨 통찰을 통해서다(26-31). 하지만 다윗은 이를 매우 조심스럽게 간증 형식에 담아낸다. 승리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초지일관 분명하게 고백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 원수들에게서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마치 영상을 보는 것 같이 생생하게 토해낸다(32-46,48-49).
이것이 목동을 들어 ‘여러 민족의 의뜸’(44)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의 영성이다(47,50-51). 보통의 경우 뭔가 잘 되는 것 같으면 자기 잘난 맛에 취해 기우뚱거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언행일치(言行一致)의 한 모델을 보는 기쁨이 여기에 있다. 다윗이 참 멋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