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우리말성경에서 가져옴
1121수요 | 욥기 29-30장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구나!
욥의 독백(29-31장)
과거(회상): 내가 전에 지내던 것같이 되었으면(29.1-25)
현재(실상): 주께서 나를 핍박하사오며(30.1-24)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구나(30.25-31)
선언(31장) - 나는 무고합니다!
지난 날들을 회상하는 욥의 고백들을 만난다. 현재와 대조를 이루는 과거의 추억들은 더더욱 오늘을 초라하게 만든다. 하지만 욥은 이유야 어떻든 어제와 다른 오늘을 인정해야만 한다. 과거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면 결코 현재를 지나 오늘을 건강하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내가 전에 지내던 것같이 되었으면(29.1-25)
욥은 할 수 만 있다면 “그 지나간 세월로 되돌아갈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2)이라며 탄식한다. 무엇보다 지난 날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회고한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상(像, image)은 매우 건강하다. 안심이다. 욥은 이어지는 간증에서 볼 때 ‘하나님의 기대’(1.8, 2.3)를 충분하게 성취해 드렸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날에(2)
-그 때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추었고(3a)
-내가 그 광명을 힘입어(3b)
-그 때는 하나님의 우정이 내 장막 위에 있었으며(4b)
-그 때에는 전능자가 오히려 나와 함께 계셨으며(5a)
남녀노소(男女老少), 지위고하(地位高下),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무론하고 이웃사랑을 따라 살았음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회고한다. 때문에 그는 칭찬과 존경과 자랑을 받으며(11- ), 뿌리가 물가로 뻗은 나무와 같고(19a), 자신의 교훈하는 말을 모두가 다 경청해주는 원로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으며 살 수 있었다(21- ). 이처럼 과거를 상기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어제의 악몽으로부터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빠져나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언어에는 원망이나, 불신앙적인 표현이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회고하는 그대로 살았을 뿐임을 담담한 어조로 반추한다.
현재: 주께서 나를 핍박하시오며(30.1-24)
현재에 대한 나열들이 어떤 색깔로 물들여질지 “그러나”(1)에서 짐작된다. 그는 자신의 현재를 한마디로 “나를 조롱하는구나!”로 요약한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에게 그럴 만 한 아무 조건이 없는 자들이라는데 아픔이 있다(2-8). 그런데도 조롱받고 있음을 아파한다(9). 하지만 자기를 향해 사람들이 하는 이러한 언행들을 맞받아 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저주하거나, 저들과 같은 방법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비록 저들은 비웃고, 침뱉고, 덫을 놓고, 길을 막고, 파멸시키려고 성난 파도처럼 공격을 해도(9-14), 그래서 두려워 희망이 사라지는 허탈(무력)감에 빠질지라도(15),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언행하지 않는다.
그의 고백이 빛난다: “이는 하나님이 내 줄을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케 하시매.”(11a) 그래서 “이제는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 날이 나를 잡음이라.”(16)로 곤두박질했음을 토로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변함없이 결론한다(18-19). 그렇지만 그의 심정은 더 말 할 수 없이 신음하는 소리로 물든다. 이게 그의 현재다. 그는 하나님 앞에 머물러 서 있다. 형통할 때도(1.1-5), 현재처럼 긴 고난의 파도를 만났을 때에도(7.3),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고통의 마지막 점(點)에 ‘기도’를 세운다(20-24):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나.” 하나님을 향한 질문의 해답과 무관하게 그는 그래도 기도를 계속한다. 이 모든 고난을 기도로 이겨내려고 발버둥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종적인 것이 기도일 뿐임을 그는 깨닫고 있고, 그래 그것만큼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수도 없이 넘어지고 무너진 생(生)의 수레바퀴를 중단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욥의 영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처음 “우리가 하나님께 복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2.10)라고 고백했던 그의 신앙이 입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확증한다.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구나(30.25-31)
그럼에도 달라진 게 없다. 현실은 그대로다. 소위 말하면 기도했더니 고난이 곧 물러갔다는 법칙은 새롭게 추가되지 않는다. 이게 삶이다. 그러나 달라진 게 있다면 일그러진 삶을 대하는 자세다.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말한다(27). 노래 소리가 통곡과 애곡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애통해하고 있고, 아픔을 아픔이라 표현하고 있다. 자기 모습 그대로를 진솔하게 밝힌다. 그는 위장된 분노를 가슴에 품지 않는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향해 삿대질하는 그런 불신앙으로 추락하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숙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온다. 자신의 수준에서 풀리지 않는 섭리의 문제를 그대로 시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