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도회

4강: 갈릴리에 복음의 파도가 일어난다.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19-06-05
성경본문
막1.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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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14-45

 

 

 

갈릴리에 복음의 파도가 일어난다.

Mk. 1:14-45

 

 

관 찰

 

갈릴리 선언(14-15)

네 제자를 부름(16-20)

축사(逐邪) - 권세 있는 새 교훈(21-28)

치유(治癒, 29-34)

기도(祈禱, 35-37)

치유(治癒, 38-45)

 

    [구조]

 

    복음/예수

    갈릴리선언(14-15) ---------------- 믿음 - 순풍

    회개 거부 - 역풍

    믿음

 

 

 

갈릴리 이야기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5)

 

마침내 주님의 입이 열리고 천국의 메시지가 선포된다.

때가 찾다.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됨으로써 이제 주님의 시대가 되었다. 창세기 3장에서 인류가 타락한 이후 역시 바로 약속되었던 [원시복음](3:15)은 이제 때가 차매’(4:4)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는 새 시대가 열린다. 따라서 선지자들의 예언은 이제 더 이상 과거(미래)가 아니라 이미 현재다. 성령 하나님과 성부 하나님의 동역을 통해 성자 예수님은 이제 3중사역(4:23), 가르치시고(1:21), 고치시며(1:34), 전도하시는(1:39)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여신다. 이 놀라운 광경을 마가는 독특한 자신의 앵글에 담아 동일한 감동을 접하도록 말씀 앞에 독자들을 세운다.

 

 

축사(逐邪)와 치유(治癒)

 

가르치시매”(21)

  →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25)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31)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34)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39)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41)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신 주님은(12-13), 아직도 여전히 흑암의 어두운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을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자유케 하시며(25,34,39), 또한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놓임 받게 하신다(31,34,41). 누가는 이를 이사야 예언의 성취로 보았다(4:16-21). 마침내 사탄의 세력은 축소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그것만큼 확장되기 시작한다. 복음이 가는 곳마다 영적 전투는 그만큼 치열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적 전쟁을 피할 순 없고, 일단 믿음으로 감당하기만 하면 승리는 언제나 복음의 몫이다. 이렇듯 주님은 당신 앞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한 번도 실망시키신 적이 없으시다.

사탄은 함께 동거할 존재가 아니라 쫓아버려야 할 더러운 세력이다. 아직도 둥지를 내리고서 복음으로 사는 길을 발목잡고 있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것이 또 있을까. 사탄은 자신 스스로 일하기도 하지만(13), 대부분은 사람들 안에서 일한다(23-26,34,39). 그는 사람을 지배하고, 질병을 통해 인생을 파멸로 이끈다. 삶의 평화를 파괴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으로부터 단절시키고, 세상을 갈등과 아픔으로 몰아넣고, 한 인생을 고장 나게 만든다. 그는 처음부터 에덴의 평화(shalom)를 저주의 심판으로 돌려놓았던 장본인이다. 하나님의 질서와 섭리를 도전해 온 가장 강력한 세력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멸망해야 할 때가 찾고’, 이 일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다. 이 도도한 영적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주님은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의 대상이 누구이며, 이를 어떻게 물리치며 살아야 하는가를 친히 보여주고 계신다. 자세히 보면, 이를 주님이 친히 하신다. 주께서 다 제거하시고, 물리치시며, 멸하신다. 사탄과의 영적 전쟁은 가는 곳마다, 일어나는 곳마다 오직 주님의 승리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기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이미 이긴, 이미 이겨 놓은 싸움을 싸우는 것 아닌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b)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신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겠다.

 

 

기 도(35-37)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35)

 

아무리 분주하고 바쁜 사역의 연속이지만 주님은 습관을 좇아 언제나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시는 일을 쉬지 않으셨다. 새벽은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었고, 그래서 기도하시기에 적합하셨던 것 같다. 이렇듯 시간과 장소는 하나님을 만나는데 중요한 요소들이다. 기도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주님에게도 기도가 필요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생명과 같은 호흡이다.

이렇듯 일상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좀 더 본질적인 것에 충실하는 훈련과 습관이 필요하다. 일에 몰입하다보면 하나님을 보는 집중력이 흐려질 수 있고, 그러면 자신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 때문에 늘 공급이 필요하다. 우리 안에서 스스로의 힘과 능력을 통해 영성과 소명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이상 위로부터 받아야 할 은혜의 단비를 온유와 겸손으로 받아야만 한다. 이게 기도다. 나의 필요와 목적을 구하기 이전에 주께서 나를 통해 이루기를 원하시는 뜻을 이해하고, 깨닫고, 발견하고, 붙들고, 그래서 더 풍성하게 주님께로 다시 돌려드리는 것, 이것이 내가 붙들어야 할 기도의 핵심이다.

주님은 이 땅에서 맡으신 종으로서의 섬김이라는 복음 사역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이 땅의 것 때문에 방해 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하나님 그분과의 교제를 소홀히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누구보다 높은 우리 자신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주님이 친히 모범을 보여주신 기도하는 삶이 우리에게도 역시 가장 중요한 사역임을 잊지 말자. 기도도 발로 뛰는 것 못지않게 포기할 수 없는 목회다는 생각을 해 본다. 주님처럼 하루의 사역이 시작될 때까지 기도하는 일에 헌신해야겠다(36-37).

 

 

부스러기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21)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34)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39)

    →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28)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33)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37)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45)

 

주님은 메시야 사역을 위해 제자들을 부르사 저들과 함께 이를 시작하신다(16-20).

물론 아직은 어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마가복음이 끝날 때가지 속 썩이는 미완성이다(16:12-14). 이를 모르셨을 리가 없다. 저들의 수준을 처음부터 다 아셨고, 또한 제자훈련을 받고 있는 중에도 엉뚱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음에도(10:35-41), 십자가를 앞에 두고 명색이 제자들이란 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14:50)였어도, 주님은 미래로 가는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 결국 주님이 옳았다. 주께서 승천하시고서야 마침내 진짜 제자들이 되었음을 볼 때 말이다(16:20).

주님은 지금 곧 사람 낚는 어부부르신 게 아니라 앞으로 어부가 되게 하리라로 부르신다(17). 우리 역시 1장의 제자들처럼 시작하여 주의 뒤를 따르고 있는 중이다. 언제나 속을 차릴지, 언제쯤에나 제자다운 제자로 안심하실 수 있는 종이 될지, 아직도 멀어 보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온전함을 향해 버둥거리고 있다. 멀어만 보이는 이 [신앙연습]이 때로 피곤하고, 회의가 들기도 하고, 쉬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에게도 제자들처럼 16:20절 이후의 그 날이 있을 것을 믿기에 그것만큼 주께서 일으키신 복음의 파도를 통해 훈련을 받고 있음을 행복해 하기로 하자.

넘어지고, 자빠지고, 좌충우돌(左衝右突) 하고, 산전수전(山戰水戰)에 공중전과 심리전까지 그야말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훈련의 연속이지만 무엇보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파도이기에 감당할 만하다. 주님에게서 내가 채워야 할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서 내가 버려야 할 것을 보고 있는 중이다. 좀 멀미가 나도 말이다. 할 만하다. 주님과 함께니까. 때문에 예서 멈출 순 없는 일 아닌가. 이렇듯 갈릴리에 복음의 파도가 일어난다. 이제 그 파도타기가 시작되었다. 주님이 어떻게 파도타기를 하시는가를 지켜보는 맛, 마가복음이라는 배에서 든 묵상의 부스러기들이다.

한편 갈릴리 선언(14-15)이 좀 특별하다. 마침내 예수님의 시대가 왔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 나라는 선지자들의 예언(그들에게는 미래였다)이 이제 더 이상 과거(마가에게는 과거다)이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다. 하지만 그것의 완성인 미래를 향하여 힘 있게 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왔고 시작되었으나 아직 그 나라는 완성되지 않은 미래와 불가분 역동적인 관계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이 이 나라를 죄로부터 떠나는 회개(55:7, 14:6)와 믿음이라는 두 날개를 통해 받아들일 것을 명하신다는 점이다. 이것은 예수님은 물론이고 초대교회로 이어지는 설교의 중심 메시지이자 신약이 줄기차게 이야기하는 제자도의 기초다(11:17-18, 20:21). 이제 주의 나라의 가까이 옴이 마가복음의 사람들 속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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