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316주일 | 묵상론(06) – 여호와는 나의 목자(牧者)시니(시23.1-6)

1316주일 | 23.1-6

묵상론(06) 여호와는 나의 목자(牧者)시니

 

묵상에도 장애물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소망이자 절망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묵상의 지속성과 관련하여 발생한다. 개인적으로 묵상을 계속하고는 싶은데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이게 마음 같이 되지 않는다는 고민이다. 이것은 결국 묵상을 계속하지 못하고 이를 포기하게 만드는 최대의 복병이다. 동시에 그럼에도 묵상(QT)을 하고는 있지만 별 재미와 의미를 얻거나 누리지 못하면서, 그렇다고 안 하기에는 뭔가 좀 그렇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저 붙들고 있기에 급급한 경우다. 이 둘 다 극단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묵상의 현실을 반영한 진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행동화된 적용만을 고집한다.

 

먼저는, 묵상에 대한 절망이다. 묵상(QT)을 처음 시작하면서는 바로 이거구나!’라며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적용하라그러니까, 그러자 날마다 하나 둘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이거 하지 말아야지, 저거 하지 말아야지가 쌓여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놀란다: ‘, 나도 이처럼 결심하고 결단할 수 있다니!’ 그러나 이를 다 실천하고, 그래서 나를 날마다 새롭게 변화시키며 달라지게 만들 수 있는가. 마치 해야 할 숙제가 쌓이는, 혹은 해야 할 일들이 쌓이는 것처럼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가 쌓이기 시작한다.

 

 

2. 그래서 찾은 대안이 <성경연구>이거나, 혹은 <성경읽기>.

 

이것은 묵상을 통한 말씀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이도 얼마든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알고, 배우고, 깨달은 성경에 관한 지식을 총동원해서 날마다의 묵상을 성경연구나 성경읽기로 채워간다. 일종의 성취감이고, 자기 만족이다. 더 이상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이거 하지 말아야지, 저거 하지 말아야지가 주는 행동화된 적용이라는 심적 부담이나 죄책감에 빠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묵상이 변질되는가. 묵상은 결국 나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고, 그것은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로 나타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처럼 되기 위해 일종의 행동화된 적용을 해야 한다는, 그러나 결국 날마다 하는 묵상이 이거 하자, 저거 하지 말자라는 소위 그 나물에 그 반찬이라는 식상함이 가져다주는, 그러나 그렇게 행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죄책감 때문에 묵상하다가 그만 혼돈에 빠져버린 것이다. 결국 나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틀에 모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어느 날부터 묵상하기의 목표가 되어 버린 결과이다. 그래서 오히려 묵상하다가 신앙생활의 자유함과 기쁨과 감동을 잃어버린 것이다.

 

 

3. 묵상의 최대 방해는 자기 자신이다.

 

묵상하는 사람이 아무런 준비 없이 그저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기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약점들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극복하고 넘어설 수 있을까. 이를 건강한 묵상과 건강하지 못한 묵상에서 찾아보자.

 

하나님(본문)과 나(묵상자) 사이의 경사도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1) 건강한 묵상

 

    본문 말씀(하나님)

             ↓

    묵상자()

 

건강한 묵상은 그 기초가 묵상하는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그러니까 본문 말씀에게 주도권(initiative)을 위임하는 겸손함에서 출발한다. 나 중심이 아니라 말씀 중심이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본문 말씀에서 그대로 느끼고, 생각하고, 받고, 듣는, 알고, 믿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분으로 인하여, 그분의 말씀하심 그대로, 하나님 때문에 그렇게 살기로 결정하는 것에 헌신하는 것이 건강한 묵상의 뿌리다.

 

(2) 건강하지 못한 묵상

 

    묵상자()

             ↓

    본문 말씀(하나님)

 

건강하지 못한 묵상은 그 기초가 하나님이 아니라 묵상하는 자신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원하는 필요와 목적과 같은 것을 얻기 위해 본문(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자기 성취에서 출발한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이상형()을 설정해 놓고 자기의 의지와 열심으로 이를 이루기 위해 이를 지지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끼워 넣는 식이다. 유감스럽지만 이처럼 묵상을 자기 성공과 성취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

 

 

4. 묵상의 주도권을 점검하십시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보면, 묵상은 내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묵상은 나 홀로 하는 독백이거나 명상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서, 나에게 오셔서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묵상하는 사람과 말씀, 이 둘 가운데 그 주도권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가 묵상을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누가 묵상의 주인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나를 날마다의 묵상의 샘 곁으로 인도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묵상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건강한 묵상의 출발이다.

 

시편 23편은 묵상하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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