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6주일 | 삼상1.19-2.10
한나에게 배우는 3가지 신앙
한나의 신앙1 – 사람(브닌나)과의 관계
[불화]
*브닌나1 -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더라.”(1.2b)
브닌나의 모습이다. 가족과 가정을 세우려는 마음이 없다(가정과 교회라는 망대를 허는 여우와 같다). 오히려 갈등과 불화의 원인일 뿐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허물어져 가는 사사시대 이스라엘을 세우고 회복하려는 거룩한 마음이 전혀 없다.
*브닌나2 -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1.6)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에도 불구하고(1.5,6), 그러나 브닌나는 이를 한나의 부족과 못남의 문제로 몰아간다. 그럼 무엇인가. 하나님의 ‘생각’(1.19b)이 들어있는 문제를, 인간이 개입하고 간섭하고 부풀리고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었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되든 브닌나는 하나님이 임신하게 하여 주신 것을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일에 사용해 버린다.
*브닌나3 -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1.7)
브닌나 역시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기는 한다. 하지만 그러니까 주일에 교회는 가지만 가족들과 성도들의 예배와 주일의 거룩함을 무너지게 하는 자다. 엘가나가 속한 공동체 전체를 무너지게 할 뿐이다.
[과정]
*한나 - “울며 … 먹지 아니하며 … 마음이 슬프냐.”(1.8a)
*엘가나(남편) -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1.8b)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한나가 브난나를 직접 대면하거나 상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브닌나는 끊임없이 가정과 가족 안에 갈등을 만들고 문제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한나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1.6a), 문제를 브닌나처럼 언행하지 않는다.
[해법]
*기도1 -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1.10)
마침내 답은 한나에게서 시작된다. 그러나 ‘한나가’의 자리에 ‘브닌나가’는 없다. 늘 그렇다. 누구는 기도하고, 누군가는 가족과 교회와 공동체로 하여금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6b)는 악한 자로 살아간다. 어디에서나 이 두 모습은 공존한다.
한나의 신앙2 – 제사장 엘리와의 관계(1.12-20)
“내 주여 …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1.15-16)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1.18a)
이해를 돕기 위해 오늘 식으로 정리해 보자. 엘리는 ‘여호와의 집’이자 ‘여호와의 전’인 <실로교회>(1.3,7,9)를 목회하는, 사사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담임목사다. 또한 제사장이자 사사다(1.9,4.18b). 그런데 여러모로 이스라엘을 대표하기에는 좀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1.13b,14).
그럼에도 무엇보다 엘리 목사를 대하는 한나의 자세와 태도는 예사롭지가 않다.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한나는 무엇인가 좀 가벼워 보이고 부족해 보이는 사람 엘리가 아니라, 그럼에도 하나님의 종 엘리를 하나님께서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집을 위해 친히 세워서 쓰시고 있는 하나님의 종으로 대한다. 그리고 그의 지도와 목회에 동역하고 순종하며 섬긴다.
한나의 신앙3 – 하나님과의 관계(1.10-11, 2.1-10)
▪한나_ 기도1 -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1.10)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1.15a)
▪한나_ 기도2 -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2.1)
한나는 고통과 슬픔 중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였고(#기도1; 1.10-11), -그 마음 변함없이, 기도를 멈추지 않고- 기도가 응답되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한다(#기도2; 2.1-10).
마침내 기도가 응답되었고, 그 응답인 사무엘이 자라고 있다. 이때 하나님만 높이는 한나의 시선이 눈부시다(2). 놀랍게도 한나 자신은 위대하신 하나님 아래에 위치하게 한다. 그 앞에 인간은 외소할 뿐이다(3).
이처럼 하나님이 앞서 행하신다면 하나님을 이길 자 없고(9),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깨어지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10). 아마도 한나의 입을 통해 엘리 이후 이스라엘, 그러니까 사무엘을 통해 이루실 이스라엘의 모습을 노래하게 하신 것으로 보인다.
한나는 젖을 떼고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린다(1.24-28). 이것이 헌신이고 응답이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1.27-28a) 마침내 서원이 이행된다(1.21-28).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다.
그럼에도 아직 이스라엘은 총체적 난국인 사사시대다. 이런 때에 사무엘이 태어난다. 그럼 무엇인가.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위에서 일하신다. 비록 이스라엘이 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언행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일하심은 멈추지 않는다. 이로써 모든 희망은 이스라엘에게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들 가운데서 한나를 찾고 계시고, 사무엘을 자라게 하신다. 이 일이 우리 양무리 안에서 심겨지고 자라고 열매 맺는 주의 백성들 되기를 축복한다. 또한 저 땅끝 몽골 을지트에서, 최지원 선교사님이 일하는 또 하나의 땅끝 튀르키예에도 심겨지고 자라고 열매 맺는 주의 백성들 되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