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461주일 | 언약궤는 있는데 하나님이 없다(삼상4.1-22).

1461주일 | 삼상4.1-22

언약궤는 있는데 하나님이 없다.

 

이스라엘의 행진의 선두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앞섰다(10.35-36).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6.1- )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15 일곱째 날 새벽에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20a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언약궤(Ark of the Covenant)란 무엇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거룩한 언약을 의미하는 십계명을 새긴 언약의 두 돌판이 든 궤다(10.33, 9.11). 자세한 양식(도면)은 출애굽기 2510-22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길이는 2.5 규빗(1.2 M), 높이와 넓이는 각 1 규빗(70 CM)이고, 순금으로 전면(全面)을 씌웠고, 위에는 순금 덮개로 덮였는데 이를 속죄소라 불렀다. 후에 만나, 아론의 지팡이, 율법책이 궤 곁()에 두어졌다(16.34, 17.10, 31.26, 히브리서 9).

또한 실물 모양의 사진에서 보듯이 금고리 넷을 달아, 채를 궤 고리에 꿰어 제사장들이 메고서 이동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중요 사건이나 의식이 있을 때에 제사장들이 메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이동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그리고 앞서 동행하신다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이기도 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주권과 통치와 보호하심 아래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블레셋과의 전쟁(1-11): 언약궤를 빼앗기다.

 

, 이런 이해를 기초로 해서 사무엘상 4장에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엘리)에게 언약궤를 앞세우고 블레셋과의 전쟁에 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사이자 제사장인 엘리가 언약궤를 메고 가자고 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1차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오자, 놀랍게도 이스라엘 장로들이 소위 <언약궤 선언>을 말하고(3), 이어서 백성들의 화답에 의해 언약궤의 전쟁 참여가 실행된다.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 놀랍게도 이 일에 하나님이 없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3-4)

 

블레셋과의 1차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패한다. 그런데ㅗ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찾거나 구하지도 않았고, 금식하며 회개의 무릎을 꿇지도 않았다. 또한 사사 엘리가 다스리는 때였으니 당연히 사사이자 제사장인 엘리가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해야 할 때다. 하지만 백성의 장로들과 백성들의 목소리만 있을 뿐이다. 그것도 언약궤 불패 역사의 경험만을 꺼낸 것일 뿐이다. 언약궤를 통해서 어떻게든 전쟁에서 이겨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3b):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이처럼 엘리 시대 이스라엘은 언약궤만 앞세우면 필승인 줄 알았다. 말하자면 다른 것들이 어떻든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단지 언약궤 = 만능열쇠였던 셈이다. 이스라엘은 보이는 언약궤를 마치 하나님으로 바라보았고, 신앙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4장에는 하나님이 없다. 단지 언약궤만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 언약궤에는 하나님의 임재 스위치가 꺼져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없다면, 그러면 이 언약궤는 단지 조각품에 불과하고, 그러면 단순히 궤만 전쟁의 선두에 서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었던 언약궤마저 빼앗겼다. 그렇다면 지금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전부를 빼앗긴 것이다. 언약궤가 앞섰는데 전쟁에서 패배한 것, 과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설명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은 최대의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그들은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22)라고 받아 들인다. 문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통찰과 돌아봄이 없다는 것이다. 사사시대의 특징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자기 소견에 옮은대로 살아가면서, 그러나 법궤만 있으면 된다는 식이다. 놀랍게도 지금 저들은 이 헛된 생각과 거짓된 신앙의 결과를 보고 있는 중이다.

 

 

엘리의 최후(12-22)

 

하나님의 이름과 임재를 의미하는 언약궤가 모독을 당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금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손가락질을 당하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이 농담거리와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그 결과 전도가 막히고, 교회 성장이 마이너스가 되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드러내기가 부끄럽게 되었다. 이쯤되면 일단 우리의 체면을 좀 생각해서라도 승리는 하게 해 주고 응답은 해 주고- 그 후에 블레셋(세상)이 보지 않는 곳에서 죄와 허물을 책하셔도 되지 않을까. 이처럼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불의와 죄악과 이스라엘의 창피를 덮으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언약궤가 있어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다. 17절처럼이다. 최악이자 슬픈 3중적 소식이 엘리에게 전달된다(17).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였고, 두 아들이 죽었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다. 이 소식을 듣고 엘리 역시 죽는다. 그뿐 아니다. 이 슬픔의 소식을 들은 비느하스의 아내이자 엘리의 며느리가 아들을 낳다가 그만 죽는다. 이 모든 것이 예고된 심판의 집행이라는 점에서 시리고 아프다(2.30-34).

 

언약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마저 블레셋에게로 사라진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이제 남겨진 이스라엘은 어찌 될 것인가. 엘리는 문을 닫았다. 여호와의 언약궤도 빼앗겼다. 마침내 심판은 이스라엘을 삼키고야 말았다. 이제 어찌할까. 이것이 사사시대가 보여주는 비극이고 역사의 결론이다.

한 번 정도 빼앗겨야(잃어봐야) 정신을 차리게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당신의 영광과 임재이기도 한 것까지라도 잃게 하실 수도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면서라도 우리가 바른 그리스도인이 되고, 믿음의 정도를 갈 수 있게 된다면 어쩌면 그것을 감수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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