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3주일 | 삼상7.3-17
사무엘처럼 살 때 일어난 일들
∎범죄/실패/심판(4-6장): 엘리 - 언약궤 사건과 그 이후
— 7개월(6.1): 블레셋…에 있은 지 7개월이라
— 20년(7.2a): 기럇여아림에 … 20년 동안 오래 있으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7.2b)
→ ∎회복/샬롬(7장): 사무엘 – 다스리다(6b,15,16,17b)
미스바, 회개(3-11):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6b)
승리, 에벤에셀(12-17):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12b)
사무엘처럼 그렇게 살 수 없을까.
마침내 범죄/실패/심판(4-6장)으로 기록된 엘리의 시대가 끝이 났다. 그러고도 20년 7개월이라는 침묵기가 더 지났다(6.1, 7.2).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오늘 본문인 7장이 그렇다. 놀랍게도 다시 건강한 사사기가 7장을 밝히기 시작한다(3). 이 부흥의 중심에 이번에는 사무엘이다. 그는 설교를 시작한다(3): ‘돌아오라!’ → ‘건져내시리라!’ 그러자 사무엘의 설교(3)를 들은 이스라엘은 이방의 신들을 버리고(4), 이어서 기도회로 다같이 모이자는 사무엘의 계속되는 설교(5)에 금식하며, 마침내 미스바에서 이렇게 응답한다: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6b)
그럼에도 이어지는 상황은 다름 아닌 전쟁이다. 악몽과도 같은 이 갑작스럽고 부정적인 반전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블레셋이 다시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어떤 전쟁인가. 7장의 평화를 무너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4장처럼 다시 범죄하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7장의 부흥기를 맞은 이스라엘을 치려고 전쟁이기 때문이다(7). 자, 이스라엘이 무려 20년이 더 넘은 침묵을 깨고 마침내 비로소 잘하겠다고, 그 중심에 예배가 회복되었을 때다. 놀랍게도 사무엘과 함께 온 이스라엘은 무너진 엘리 시대를 다시 부흥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회개와 예배가 회복되고 있을 때다. 그런데도 전쟁이고, 7장의 샬롬을 깨버리겠다는 싸움이다.
이때 이번에는 이스라엘은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다시 4장의 혼돈과 불신앙으로 추락하는가, 아니면 사무엘과 함께 이제까지와 다른 전성기를 보여줄 것인가. 사무엘상 7장은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온전한 예배를 여호와께!(3-11): 건강한 사사시대가 복원되다.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2b)
“사무엘이 …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5-6)
→ “블레셋 사람들이 …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7a)
“사무엘이 … 온전한 번제를 드리…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9)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10a)
→ 블레셋 -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 오매”(10a)
여호와 - “블레셋 사람에게 우레를 발하…시니 그들이 … 패한지라.”(10b)
사무엘은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사사는 아니다. 그는 기도하고, 하나님이 직접 전쟁에 참여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 사무엘의 생애 전체(15-17)를 벧엘 → 길갈 → 미스바 → 라마를 순회하며 사역하면서 사무엘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사사시대는 부족함이 없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사사인 사무엘이 다스리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곧 시련과 고통이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원망하나요? 아니다. 이스라엘이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8) 이것이 사무엘로 충분하다는 것의 의미다. 동시에 이것이 사무엘상 7장의 위치다.
서서히 이스라엘은 사무엘을 중심으로 회복되어 간다. 법궤는 돌아왔고, 백성들은 회개하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니까 사사시대는 사무엘로서 충분하다.
엘리가 사사로 있을 때와는 달리 7장이 전하는 메시지에 의하면 사무엘이 다스릴 때의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견고하다. 건강한 사사시대로의 복귀이자 회복을 이루어 낸 것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회개운동(3-4,5-9)에도 불구하고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다(7). 그러자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건강한 반응을 보인다. 이전처럼 원망하거나 불신앙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무엘에게 자신들의 구원을 하나님께 ‘중보기도’해 줄 것을 요청한다(8). 이에 사무엘은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은 응답하신다(9).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4.1)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 여호와만 섬기니라.”(3-4)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5a)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6b)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15)
“사무엘이 해마다 (벧엘, 길갈,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16)
“사무엘이 … 라마…에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17)
7장은 이스라엘이 사사시대에도 불구하고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사시대가 이럴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무엇보다 그 중심에 선지자이자 사사인 사무엘이 자리한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이제 이스라엘은 자기 소견대로 언행하거나, 언약궤만 앞세우는 거짓되고 헛된 신앙의 허세에서 벗어났다.
그 증거가 말씀과 기도와 회개와 제사 곧 예배의 회복이다. 이제 정상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평강과 평화를 주시고(14b), 사사시대의 영광이라는 부흥을 경험하게 하신다. 얼마나 오랜만에 맛보는 하나님의 부흥인가. 그렇다, 사무엘상 7장이면 충분하다. 사무엘이 다스리는 것이면 충분하다. 사무엘처럼 살 때 이스라엘이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한다. 내가 사무엘처럼 살 때 교회가, 가정이, 우리가 다 하나님의 부흥을 이루게 된다.
이런 경험이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도 필요하다. 다시 한 사람 사무엘의 헌신과 충성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어찌보면 모든 것은 사사시대다. 단 하나, 엘리에서 사무엘로 지도자, 그러니까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하자면- 목회자 하나 바뀌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이 찾아오사 말씀하시는 은혜를 흐르게 하고, 회개와 회복을 이루어내고, 기도와 제사(번제) 곧 예배를 드리며 이스라엘을 다스린다(6b,15,16,17b).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로서다.
4-6장의 이스라엘인가, 아니면 7장의 이스라엘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4-6장의 양무리교회인가, 아니면 7장과 같은 양무리교회인가.
그렇다면 또한 우리는 4-6장의 가정이자 가족인가, 아니면 7장과 같은 가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