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9주일 | 삼상31.1-13
사울, 돌이키지 않을 때 일어난 일들
사울은 다름 아닌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삼상9.16a)는 사명으로 부르심을 입었다. 하지만 40년 동안이나 이 사명에 응답하지 못하고 마침내 블레셋에 의해 전사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1] 이스라엘 초대왕 40년 동안에도
사울의 이질적이자 불신앙적인 행보들(사울왕정 40년의 비극)
더 큰 악(惡)은 이것이다. 무엇보다 사울은 다윗왕국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원하지 않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단지 왕권이 사울가에서 다윗가로 넘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차원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다윗을 통해, 그러니까 유다 지파를 통해 ‘여자의 후손’(창3.15)을 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와 역사를 거부하고 거역한 것이다.
그것의 주요 흔적들은 사울이 토해낸 그의 마음에 있는 것들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 악한 마음은 한 때 잠깐이 아니다. 다윗이 등장하는 때부터 사울 자신이 죽는 날까지 연속적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만 정리해 보자: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얻을 것이 이제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그날 이후로 다윗을 주목하였더라.”(18.8-9)
*‘다윗 죽이기’를 위해 2번이나 창을 던지다(삼상18.10-11).
*‘데릴사위’를 미끼로 블레셋의 손에 죽는 음모를 꾸미다(18.17,20-25).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18.29)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20.21a)
길보아대첩에서 전사하는 사울(1-6)
왜 이처럼 사울은 무너졌을까. 성령으로 시작한 사람 아니었던가. 하지만 놀랍게도 사울은 다윗을 만나는 사무엘상 16장의 시점에서부터 지금 사무엘상 31장에서 생이 마감될 때까지는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난 상태에서 행하는 일이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영으로 다스림 바 되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다 사울처럼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낸 신, 내가 원하고 필요로 한 답을 주는 바로 그 인조신(人造神)에게 길을 묻고,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죽음, 그 이후(7-13)
“골짜기 저쪽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쪽에 있는 자들이 …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에서 사니라.”(7)
[2] 죽을 때에도
마침내 사울은 블레셋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사울의 생애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앞서 사울은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세움을 받았다(삼상9.15-16a). 그러나 사울은 오히려 이 블레셋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뿐만 아니다. 아예 블레셋 사람들이 가나안에서 정착하고 산다(7). 왕정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옛 사사시대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사울은 다른 그 무엇보다 끝까지 자신의 사명에 불순종한 셈이다.
그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윗 죽이기가 사명인 것처럼 살았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버리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산 것이다. 다윗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이루실 일들을 거역하는 불신앙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13.13-14).
[3] 죽음 이후에도
베냐민 지파의 행보 가운데, 그리고 분열왕국 때까지 계속되다.
*시므이의 저주 –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난을 떠날 때(삼하16.5-13, 19.16-23)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라고 외치며 피의 복수를 당하는 것이라고 악담하다.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반란 –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한 후의 도전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삼하20.1)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는 분열왕국 때 베냐민 지파가 속한 북쪽 지파들이 다윗왕국을 거절하다(왕상12.1-24)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왕상12.16)
사울은 베냐민 지파이고, 다윗은 유다 지파다. 지금껏 구약은 창세기에서부터 ‘여자의 후손’(창3.15)의 발전을 주목해 왔다. 그 흐름은 셋, 노아, 아브라함-이삭-야곱을 거쳐 유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베냐민 지파의 후손 기스의 아들 사울이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도 사무엘의 선언을 대할 때 더 그렇다(13.13):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이제 사울은 죽고, 다윗은 살아 있다. 과연 이스라엘은 어찌될 것인가. 이미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16.13), 그는 어찌 될 것인가. 사울에 대한 철저한 심판은 이어질 다윗과 그의 나라에 어떤 영향으로 주어질 것인가. 다윗은 사울과 다르게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기대와 요구를 응답해 갈 수 있을까. 사울을 폐하신 하나님이시라면 다윗도 폐하시는 것은 아닐까. 이제 다윗이다. 그는 사울과 다른 길을 걸어갈까. 아니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스러운 다윗으로 추락하고 말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