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357주일 | 광야교회(행7.35-43)

357주일 | 7.35-43

광야교회

  

광야교회가 세워지다.

  

   [광야교회 전후사]: 출애굽기 1-17

   3.7 애굽(세상)에서 부르짖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12.37,40 장정이 60, 애굽생활 430년이 끝나다.

   14.22 바다를 육지로 걸어가고

   16.12 고기를 먹고 떡으로 배부르리니

   17.6 반석에서 물이

 

   [7.35-38]

   35b - 지도자(관리)와 구원자(속량하는 자)

   36 40(애굽, 홍해, 광야)

   37 나와 같은 선지자(18.15)

   38 살아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

  

모세와 광야교회를 보라(35-38; 고전10.1-4). 모세 목사가 있고, 그 뒤에 하나님이 계신다. 이를 모든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 곧 장정만 60만명에 이르는 광야에 개척된 광야교회가 목도한다. 광야교회는 헬라어로 광야 안에 있는’(en te eremo), ‘교회에’(en te eklesia)로서 지금 신약교회가 부르는 교회와 같은 에클레시아다.

 

광야교회가 세속화되다.

 

그런데 이런 영광스러운 이스라엘과 광야교회가 부흥이 아니라 곤두박질치며 무너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렇다. 이런 영광스러운 교회도 쇠퇴한다.

 

   광야교회, 멸망의 이유들

   39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

   39 -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41 우상 앞에 제사하며 기뻐하더니

 

그렇다면 무엇이,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광야교회가 그만 이처럼 무너지고 마는 것일까. 좋은 교회에서 멀어지는 교회의 특징들이다.

먼저, 목회적 리더십, 즉 영적 권위의 부재다. 모세 목사의 문제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르지 않았다(39a). 툭하면 너만 하나님의 종이냐는 후렴구가 들려올 정도였다.

둘째, 광야교회에 일하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애굽을 향해 늘 마음의 방향을 둔다(39b). 애굽은 무엇인가. 홍해를 건너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기 이전의 상태인 세상을 가리키는 곳이 바로 애굽이다. 그럼 무엇인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호시탐탐 기회가 되면 하나님 없는 세상, 즉 옛 사람으로 돌아가겠다는 모습이다.

셋째,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려 한다(40). 하나님으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인도할 돈을, 우리를 인도할 노후 준비를, 우리를 인도할 건강을, 우리를 인도할 연금보험을, 우리를 인도할 자녀를, 우리를 인도할 우리 말을 잘 듣는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자고 소리친다.

넷째, 이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우상 앞에 제사한다(41). 이것이 광야교회의 기쁨이 되었다. 이 정도면 교회 문 닫아야 한다.

 

언제나,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어찌 보면 모세 목사가 설교를 하고, 기적과 이적을 행하였음에도 구약 모세오경 위에 세워진 영광스럽고 찬란히 빛날 광야교회는 병들어 무너졌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해서였는가. 아니다. 은혜와 기적으로 출애굽 홍해 광야교회로 이어지는 축복과 영광의 고속도로가 펼쳐졌으나 교만으로 비롯된 하나님을 버린 것이 치명적이었다.

인간은 이처럼 좀 잘 되면, 살만 하면, 하나님이 특별히 도와주시지 않아도 내가 만든 것들이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대신해 주는 것 같으면 하나님도 헌신짝처럼 버린다. 그게 사는 길이 아니라 죽은 길인 줄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저항하고 반항하고 대적한다. 이게 뭐라고? ().

이처럼 위대한 광야교회도 무너진다. 그러니 위대한 게 중요하지 않다. 광야교회처럼 다 가진 게 중요하지 않다. 좀 없어도, 좀 부족해도, 좀 못났어도, 좀 가난해도, 좀 덜 벌어도, 좀 작은 집에 살아도, 좀 노후준비 덜 되었어도, 좀 몸이 부실해도, 인생보고서에 적을 만한 게 없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쪽으로 걷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면 아멘이다.

늘 얘기하지만,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건 진리다. 잘 나고 똑똑한 나무는 이미 저 먼 산을 다 떠났다. 자기 잘난 맛에, 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못생긴 나무와 같아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자는, 그는 하나님으로 충분하다며 그냥 무던하게 하나님께 속해 있는 자는 뒤돌아 보지 않는다.

 

[멘트] 다음 정거장은 광야교회입니다. 내리실 분은 오른쪽입니다. 1-2번 출구로 올라가시면 애굽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시 후 우리 버스는 광야교회에 도착합니다... 지금 이곳 광야는 43-45도를 오르내리는 중입니다. 젖과 꿀이 풍요로운 땅, 애굽으로 가십시오.”

어떤가? 내리실 것인가. 진정 다시 애굽으로 가는 버스를 탈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 약속의 땅이자 아름다운 땅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광야에서 무너지면 안 된다. 지금 이곳 광야 같은 인생길에 그만 주저앉으면 안 된다. 좀 살게 되었다고, 세례 받았고, 홍해를 건너는 기적도 맛보았다고 여기서 자만하고 교만하고 거만해서는 끝이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잠시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 시절, ‘한번만 더 살려주세요, 하나님!’을 목놓아 부르던 그 낮아지고 무릎 꿇고 겸손하고, 그래서 처절하게 하나님을 구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때를, 아무 소망이 없던 애굽의 시절을, 허물과 죄로 죽었던, 죄의 노예로 살던 본질상 진노하심과 저주 아래 있었던 때를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이스라엘처럼 넘어지고 자빠져며 휘청거리기는 했어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던 내 신앙의 한 때가 들어있는 나의 광야교회를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다시 애굽으로 후진할 수는 없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이 광야에서 다시금 타는 목마름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와 회복과 부흥을 갈망해야 한다. 우리를 죄악의 애굽에서 깨내셔서 당신의 백성 삼으시고, 거룩한 나라로 세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비록 광야교회 밖에 만드는 자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광야교회마저도 포기치 않으신다. 놀랍다. 그러니 지금 나 역시 광야교회와 같다 할지라도 거기서 시작하자. 고린도교회 역시 그러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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