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새벽 | 시41.1-13
주여, 내게 치료의 은혜를 베푸소서!
다윗의 기도: 은혜를 베푸소서 … 고치소서(4)
살게 하시리니(2a)
병상에서 붙드시고 …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3)
일으키사(10)
영원히 … 영원까지(12-13)
원수의 악담: 악담하기를(5)
거짓을 말하고 … 악을 쌓았다가(6)
수군거리고 … 해하려고(7)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 일어나지 못하리라(8).
대적하여(9)
다윗은 다른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렸다고 생각할 때다. 그만큼 심각한 병으로 치료 중인 모양이다. 다윗은 이제 끝났다는 악담이 끊어지지 않았다(5,8). 설상가상으로 믿을 친구마저 신발을 갈아 신는다(9). 이런 위기의 극한 순간에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으로 질병 앞에 선다. 외부적 환경은 원수들의 악담하기로 흘러 넘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다(5-9). 이러한 때 다윗은 뭘 기도하고 있는가?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감히 누가 다윗왕국을 겨냥하여 그가 일어나지 못하고(8), 그 이름이 없어질 것이라(5) 공공연하게 거짓을 유포하는 것일까?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다윗왕국의 영원성을 다윗언약에 담아 말씀하셨다(삼하7.1-17). 그렇다면 원수들의 악담하기는 결국 하나님의 언약까지를 무력하게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하나님까지도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원수들의 실체다(5-9).
내가 주께 회개하나이다.
다윗은 자신의 질병의 원인은 의학적인 것이 아니라 신학적이다: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4b) 다윗이 지금 “주께 범죄하였사오니”라고 회개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다윗 자신은 한낮 죄인에 불과한 인생이며 무능하다는, 그래서 지금의 이 상황과 형편을 자신의 능력으로 역전시킬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완전 항복함으로써 하나님만이 이 형편을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2b) 않고 해결하실 수 있음을 다윗은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해석이 다 되지 않고, 이해해 내기 어려운 숙제의 연속인 게 인생길이다. 이때 다윗처럼 문제를 읽어내고 적용해가는 것이 모두에게 일어나는 것은 또한 아니다. 때문에 다윗이 자신에게 펼쳐지는 상황을 읽어내고, 이를 풀어가는 방식은 이해는 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그대로 모두가 다 따르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다윗의 언행은 쉽고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다윗이 취한 답을 아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다윗처럼 행하며 풀어가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거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윗과 같은 상황을 모든 사람이 만나지만 다윗처럼 그것을 풀어내고 극복해 내는 것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