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도회

1385수요 |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가리킨다.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4-10-30
성경본문
요한복음 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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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5수요 | 2.13-22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가리킨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이 소개된다(14-16). 하지만 성전된 자기 육체’(21)와 비교된 예루살렘 성전의 몰골은 한마디로 참담하다. 성전과 관련하여 요한은 앞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1.14a)라고 전한다. 여기 거하시매라는 단어는 성막을 치시매라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성육신이 곧 보이는 성전으로 임하신 것이다.

 

14- “성전 안에서 보시고.”

성전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만나고, 죄사함을 받고, 은혜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로서 주어진 하늘의 문이다. 그런데 단지 장사하는 사람들로 득실거리고, 사람과 제물(짐승)의 냄새만 풍기고 있으니 주께서 이처럼 언행하시는 것 아닌가

 

16-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당시의 종교적, 영적(靈的) 형편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얼마나 긴 영적 혼돈이요, 방황인가. 성전이 있고, 제사장이 있고, 제사가 있고, 제물이 있고, 제사를 드리는 자가 있어도 어느 것 하나 자기 기능(역할, 사명)을 다 하는 것이 없다. 타락은 이처럼 성전(교회)을 이용해서 자기 이익을 남기는 장사꾼들만 남게 되어 버렸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19-22-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

예수님의 성전청결 언행은 곧바로 유대인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18, 4.48 참조) 진리의 주인을 모르면 그 진리 앞에서도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한다. 원래 예루살렘 성전은 참 성전(성막, 1.14a)이신 그리스도를 밝히 드러내고, 비추어야 한다. 그런데 기막힌 역설은 성육신을 통해 자신을 친히 장막으로 이 땅에 펼치신 그리스도를 오히려 예루살렘 성전이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참 빛이신 성전이 오셔서 어두운 예루살렘 성전을 비추고 계시기 때문에 이제 타락한 성전의 어두움(14-16)은 물러갈 때가 되었다. 바로 그때가 임박했다. 이 역시 장차 보리라는 주님의 영광에 대한 비전 속에서 성취될 것이다(21-22). 이걸 모르니까 20절처럼 대답할 수 밖에 없다.

46년이 어떻게 3일로 이해될 수 있으랴. 성전이 어떻게 예수님 자신의 몸을 가리킨다는 이 진리를 알 수 있으랴.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22) 본문의 제자들도 장차 보리라를 통해서 해결되고 있다(22).

 

헐어야 할 것은 좀 헐어 버리고 살아야 한다. 진짜 세워야 할 것이 그것들 때문에 방해받거나, 늦어지지 않아야 해서다. 주님의 은총의 빛이 아니면 이 영적 어두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감사한 것은 22절이 내 안에 진리로 임하였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22b)- 교회의 몸되신 주심을 섬기는 자로 살아가고 있음이다. 우리에게도 3일만에 일으켜진 성전이 있다. ‘장차 보리라가 내 안에도 이루어져 가고 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15.37-38)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

 

“(새 예루살렘)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그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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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0)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한 100대 기도제목: 감사기도

    01 흑암 가운데 소망이 없던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시고, 예수 십자가의 사랑으로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나라에 선교사보다 성경이 먼저 들어오게 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민족교회의 초석이 되게 하셨음을 감사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 나라와 민족에게 다시 한 번 부흥을 주옵소서.

    02 1866년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의 피를 대동강변에 흘린 후, 1884년 알렌 선교사를 시작으로 수많은 선교사들의 눈물과 헌신이 우리 한민족교회에 뿌려졌습니다. 순교의 피를 비롯하여 초기 한국교회 성도들의 땀과 눈물로 이 민족이 축복받아 세계선교를 담당하는 영적 강국으로 서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03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의 어둠이 짙었을 때에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영광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의 시간에는 산과 들마다 천막 교회를 세우시고, 예배의 처소마다 성령의 역사와 은혜를 부어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교회를 세우시고 성령을 부어주셔서 고난을 돌파하는 산 소망이 되셨음을 인하여 찬양합니다.

    04 전 세계에 유례없는 경제 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내며,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게 하시고, 인권 향상과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로 발전하게 하심을 감사하나이다. 특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헌신, 그리고 신앙자본을 사용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05 우리 자신과 한국 교회의 연약함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이 민족과 교회와 성도를 버리지 않으시고, 깨어나 회개하고 자복하여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일을 위해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를 세우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부어주셔서 영적인 흐름을 잡게 하시고, 민족의 파수꾼 역할을 감당케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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