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4수요 | 삿2.7
사사들의 구원 이야기
1. 서 론(1.1-3.6)
사사기의 분위기와 어조는 처음부터 암울하다. 한 쌍의 서론(1.1-2.5, 2.6-3.6)은 모두 여호수아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되며(1.1, 2.8),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을 쫒아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각각 끝이 난다(2.3, 2.23).
그 이유는 여호수아를 통해 주어진 이스라엘의 사명과 관련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유감스럽게도 가나안에 대한 완전정복 수행,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 살아감이라는 두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다. 결국 모세와 여호수아의 ‘예고편’대로 역사는 흐른다. 이것이 서곡(序曲)이 품고 있는 사사기라는 씨앗이다: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2.3; 민33.55, 수23.13)
2. 사사들의 구원 이야기(3.7-16.31)
애굽 → 광야 → 가나안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언약되었던 바로 그 약속의 땅에 들어 왔다(창12.7, 15.12-21). 그런데 이 ‘안식’(rest)의 땅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비안식’(unrest)의 땅과 백성이 될 수 밖에 없다.
사사들의 구원이야기에서는 -아비멜렉을 제외하고- 이스라엘의 역사가 6번 반복되는 순환(cycle)으로 제시되고 있다. 각 이야기는 등장 인물과 장소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한편 12명의 사사를 등장시킴으로써 12지파가 공히 여호수아 이후의 가나안에서의 정복 활동을 계속하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 특별하다.
하나님은 비록 연약한 인간 사사들을 사용하시지만 이스라엘의 유일한 사사는 여호와 한 분이다. 사사들은 한결 같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고루 지니고 있다. 어디 사사들뿐인가. 우리 역시 악하고 추한 죄인들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함을 얻어 주께서 쓰신다. 결국 사사들로서는 가나안이 평화(안전)로울 수 없다.
[사사기의 순환 싸이클(cycle)] -나선형으로 발전
이스라엘의 범죄(패역, 우상숭배): 배신
→ 하나님의 진노: 심판
→ 압제(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 이스라엘의 부르짖음: 회개
→ 하나님의 평화: 구원
→ 이스라엘의 재범죄
점차 더욱 몰락해 가는 사사기의 하강구조는 사실 이미 예고되었었다(2.10). 이 일은 기드온(6-8장) 이후에 본격화된다. 지도자답지 않은 사사들, 점점 심해지는 배도의 강도, 이것들이 서로 부정적인 상승작용에 협력한다.
첫 사사 옷니엘(BC 1,375)부터 마지막 사사 삼손(BC 1,050)까지 사사들은 대략 300년이 넘는 기간을 통치했다.
3. 결 론(17.1-21.25)
[장조 멜로디]
누가 올라가서(1.1)
유다가 올라갈지니라(1.2)
↔
[단조 멜로디]
이스라엘 자손이 … 올라가서(20.18a)
유다가 먼저일지니라(20.18b)
앞에서 읽었던 대로 ‘올라가다’(1.1-2 ↔ 20.18) 멜로디가 긍정(장조)과 부정(단조)으로 쌍을 이루고 있다. 사사기의 두 얼굴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그림에서 이스라엘의 흥망성쇠(興亡盛衰) 이야기의 허무함을 만난다.
이제 더 이상 반역과 핍박과 구원이라는 순환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주제 공식이 달라진다. 즉, 종교‧도적적으로 혼란과 부패의 고리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를 보여준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17.6; 참고. 18.1, 19.1, 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