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102주일 | 나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행3.1-10)

1102주일 | 3.1-10

나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베드로가 나면서 못 걷게 된 이인 이 사람을 오늘에서야 처음 본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유는 그가 날마다성전 미문에서 구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2b). 그런데 오늘 특별히, 베드로는 나면서 못 걷게 된 이의 가장 큰 문제를 마침내 직시한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들은 성전이 단지 육신적인 필요만을 채우는 구걸의 장소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나면서 못 걷게 된 이에게 더 계속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면 곤란하잖아요?’ 정도에서 인가요. 아니다. 근본적인 답을 주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3-8a)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6a)

지금 베드로에게는 있는 그것이 이 사람, ‘나면서 못 걷게 된 이’(2) -“이 표적으로 나은 사람은 40여 세나 되었더라.”(4.22)- 에게는 40년이라는 시간 동안이나 없었다. 베드로에게 있으나 나면서 못 걷게 된 이’(2)에게 없는 그것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으니 그는 예수님께 구하여 있게 할 수조차 없었다. 그랬으니 그에게 있어서 성전은 단지 육신의 필요를 구걸하는 장소에 불과했던 것이다. 무려 40년이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2)라고 했으니 그의 일평생이라는 생애 전부가 그랬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 어찌 나면서 못 걷게 된 이인 이 한 사람만이 이처럼 살아왔겠는가. 지금 참된 진리를 모른채 예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 특별히 예수님이라는 사람은 알지만 그 이름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러하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 없는 자가 그렇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잃어버렸고 끊어져버린 관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잇게 한다. 이처럼 오직 복음만이, 시작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이 끊어지고 단절된 관계를 잇게 한다.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6b)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일한다. 그렇다면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의 이름이 전하여지는 통로인 셈이다. 그렇다. 예수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은 예수 이름으로 일한다. 반대로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의 것으로, 명예와 부와 권력과 야망으로 일하는 사람은 문제를 이런 것들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또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예수 이름이 고백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영적 무지요, 증인을 포기한 것이고, 그러면 죄악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나님을 찬송하니(8b-10)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열심이, 베드로에게 있는 사랑이신 하나님과 긍휼에 풍성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이처럼 베드로로 하여금 나면서부터 영적으로 못 걷게 된 이(2)로 살아가는 인생을 자신에게 있는 것,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한 것이다. 베드로가 진짜 주고자 했던 것은 자신에게 있는 이 예수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미하니”(8a)

베드로에게 있는 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는 더 이상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그도 역시 이제는 베드로처럼 성전에 들어간다. 베드로에게 있는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게도 있으니까 그렇다. 예수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전에 들어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마침내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는 예수가 없었던 때와는 달리 마침내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맛보았다. 은과 금을 구걸하던 인생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9)

세상도 그가 변화된 것을 보고 느끼고 안다. 그러면 나는 변화되었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이 되었는가? 이것은 다른 사람이 알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때문에 예수 안에서 변하여 새롭게 된 사람은 자신의 변화를 세상이 알지 못하도록 비밀스럽게, 감추어진 보화로, 익명(匿名)으로 숨어 살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살아야 할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다. 내가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내가 그리스도인인가를 먼저 안다.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10b)

한편, 백성들은 단지 나면서 못 걷게 된 이의 변화된 겉모습만을 보고 있다. 그들은 그 사람 안에 들어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그러니 믿지 못하는, 따라서 이 은혜를 공감하지 못한다. 있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니까. 그래서 단지 이상히 여길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면서 못 걷게 된 이의 변화에 있다. 아무리 세상이 기이히 여기는 것으로 밖에 반응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할 뿐이지,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그들과 상관없이 진행된다.

 

베드로에게 있는 것,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6b)이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확신도 아니다. 오직 예수다. 그는 이어서 외치는 세 번째 설교(11-26)에서도 이를 분명히 한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16) 진실로 아멘이다.

내게 있는 분이신 예수님은 나를 살리고, 또한 너를 살리는 분이시다. 이 일은 베드로에게서 일어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베드로를 통해서다. 지금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하지만 이 일을 주님은 지금 나를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나에게도 예수님이 있어서다. 나에게도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가.

 

이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는가.

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는가.

이 예수 그리스도가 양무리 공동체 안에 계시는가.

그러면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역사가 모두가 다 보고 알 수 있도록 나타날 것이다.

내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곳에 역사하게 해야 한다.

우리에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곳에 역사하게 해야 한다.

이 일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한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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