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새벽 | 사36.1-22
기(起) - 히스기야 이야기(1)
히스기야(Hezekiah)는 유다 제13대 왕으로 29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영영한 ‘심판’(에돔/에서, 34장)이 아닌 영원한 ‘거룩한 길’(유다/야곱, 35장)로 행하게 되는가를 들려주신다. 에돔에 이어 산헤립을, 유다에 이어 히스기야가 각각 주제 멜로디가 되어 반복됨으로써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신다.
히스기야(Hezekiah)
히스기야(‘여호와는 강하시다.’)는 자신의 재임 기간 중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BC 722)하는 것을 목도한다(왕하18.10). 아마도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남왕국 유다로 하여금 강력한 종교개혁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도록 했을 것이다(역대하 29-31장). 이스라엘처럼 멸망하지 않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헤립의 침공(36장, 왕하18.13-37) 앞에서도 히스기야는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37장, 왕하19:1-37, 대하32.1-23).
랍사게(Rabshakeh)
한편 앗수르 군대는 이미 라기스(Lachish, 예루살렘 남서쪽 40㎞, 2)까지 밀고 들어와 있다. 그 와중에 앗수르에서는 랍사게가, 그리고 유다에서는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아가 협상을 벌인다(2-3). 그러나 유다는 앗수르의 랍사게의 일방적인 통고를 듣는(4- ), 그것도 성 위의 백성들이 모두 다 유다 방언으로 그것을 듣는 치욕스런 장면이었다(2,11,13).
세상은 여전히 자신의 힘을 믿고 오만불손(傲慢不遜)하며 방자하다(4-5).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뿐만 아니라 인간 산헤립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는다(7,10,15,18-20). 이것도 모자라 하나님 행세를 한다(16-17). 스스로를 에돔의 길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34장).
랍사게는 하나님을 알거나 믿지도 않는 불신자(不信者)다. 그런데 가증스럽게도 하나님을 입에 오르내린다. 이는 마치 독재자들이 성경, 특별히 로마서 13장 1-7절을 믿지도 않으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은 파렴치함이다.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하나님의 이름까지도 수단으로 사용하는 인생들에게서 “인간으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을까?”라는 연민을 느낄 뿐이다.
이런 종류의 인생들은 이사야 시대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나 역시 나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교묘하게 성경을 ‘끼워넣기’ 하고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마저도 허풍(교만) 속에 집어 넣어버린다면 결국 나 또한 에돔으로 가는 길에 합류한 동류인 셈이다(34장).
어느 때에나 히스기야처럼 사는 자와 랍사게처럼 사는 자는 공존한다. 랍사게가 이끄는 앗수르 대군이 “윗 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발 큰 길”(2b)에까지 진군해 왔으니, 승자(勝者)처럼 보이는 자의 당당함을 나무랄 명분도 없어 보인다. 따라서 랍사게처럼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처럼 공동체의 분위기를 자멸하도록 이끄는 ‘말꾼’들이야말로 유다(하나님의 백성)가 가장 경계해야 할 악의 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