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도회

50강: 제자들은 부인할 것이고, 예수님은 기도하시다.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0-10-07
성경본문
막 14.27-42

47E32DC1-731E-4062-8AC0-B9BE67CF53FA.jpeg

 

453수요 | 14.27-42

제자들은 부인하고, 예수님은 기도하시다.

 

버림과 따름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으며 겟세마네 동산으로 향한다(27-31). 베드로를 시작으로 결코 주님을 부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모든 제자들이 한결같이 말한다. 하지만 흩어질 것이고(27,31 50-52), 갈릴리 예고를 잊고 있으며(28 16:7), 베드로의 세 번 부인 역시 주님 말씀하신 그대로 이뤄진다(29-30 66-72). 연약한 제자들, 믿음 없는 제자들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미 부활 이후를 살고 있는 나 역시 예고편에 서 있는 제자들보다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은 목소리 크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호언장담(豪言壯談) 한다고 그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정말이지 말만 앞세우는 떠벌이는 되지 말자.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서 다른 무엇보다 기도하시기를 원하셨다(32-42). 주님에게도 기도가 필요할까 싶다. 내가 구하는 것과 같은 그런 뭐가 필요하신 것은 아니셨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이것 주세요!” 식의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에만 맞추어져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33b-34a)라시는 주님의 고백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지나가기를(35), 고난의 잔을 자신에게서 거두어 주시기를 구한다(36a). 하지만 그러나. 그러나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구하는 기도를 거듭 반복하신다(36b,39).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결단하는 기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기꺼이 자신을 아버지께 맡기는 기도, 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33-35절을 뛰어 넘으사 41절 앞에 서시는 것에서 기도가 쌍방적인 대화이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는 통로임을 깨닫게 된다. 분명 잘 때가 있고 깨어 기도할 때가 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걸 모른다(37,40,41). 영적 무지가 기도를 방해한다 싶다. 분명 신랑을 빼앗길 날’(2.20)이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금식은 물론 기도하자는 멍석을 깔아 주어도 잠만 자고 있는 제자들의 행동에서 나의 숨은 모습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기꺼이 거기에 헌신할 수 있도록 기도하셨다. 생각해 보면 내 기도의 보따리에는 내가 바라고 원하는 메뉴들로 가득하다. 그것들 가운데서 오늘은 새 메뉴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이렇게 해 달라고, 저렇게 해 달라고 아우성친다. 그러면서도 뻔뻔하고 당당하게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이게 부족하다고, 이런 양념은 싫어한다고 당장 내 취향에 맞는, 내 뜻에 맞는 응답만을 고집하는 까마득한 영성의 밑바닥을 바라본다. 주님이 만들어 주신 내 앞에 있는 삶의 메뉴들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아니란다. 이게 나다.

한편 기도의 응답이 왔지만(41) 십자가를 져야 하는 문제는 그대로다.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해서 골고다로 가는 길이 하나님 우편 보좌로 가는 길로 바뀐 게 아니다. 상황과 문제와 삶의 숙제는 그대로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걸 받아들이는 믿음과 자세와 영성이 새로워진 것뿐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면 그렇게 크게 보였던 문제가 초라하리만큼 작아진다. 이것을 겟세마네에서 주님으로부터 배운다. 주님처럼 나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지고 겟세마네로 올라가자. 기도하라 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따를 수 있는 자로 성숙하기를 기도한다.

  

다락방에서(12-26), 감람산으로 가는 길에서(26-31), 겟세마네 동산에서(32-42), 그 사이사이에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모습에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가를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안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셨던 주님에게서 무엇이 우선한가를 깨닫는다. 죽음으로 가는 길마저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시는(36) 주님에게서 나의 삶의 여백을 무엇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그려본다. 비록 거북이처럼일지라도 말이다.

 

   

59강: 종의 고난에서 주의 영광으로!

김충만 목사
20210106
막 16.14-20

58강: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김충만 목사
20201209
막 16.1-13[2]

57강: 다시 사신 그리스도(1)

김충만 목사
20201202
막 16.1-13[1]

56강: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 증인들

김충만 목사
20201125
막 15.33-47

55강: 희롱 당하는 종,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김충만 목사
20201118
막 15.16-32

54강: 빌라도 법정에서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김충만 목사
20201111
막 15.1-20

53강: 아직 희망은 있다.

김충만 목사
20201104
막 14.66-72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순회기도회)

온성도 목사
20201028
고후 4.7-11

52강: 거짓증거 - 신성모독이로다!

김충만 목사
20201021
막 14.53-65

51강: 유다의 배신 vs 예수님의 사랑

김충만 목사
20201014
막 14.43-52

50강: 제자들은 부인할 것이고, 예수님은 기도하시다.

김충만 목사
20201007
막 14.27-42

49강: 유월절 만찬: 다락방 이야기

김충만 목사
20200923
막14.12-26

48강: 내 옥합을 깨뜨릴 차례다!

김충만 목사
20200916
막 14.1-11

47강: 깨어 있으라! - 교훈들

김충만 목사
20200909
막 13.28-37

46강: 말세의 징조들, 그리고 주의 재림

김충만 목사
20200902
막 13.14-27

45강: 이미 종말은 시작되었다.

김충만 목사
20200826
막 13.1-13

44강: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이다.

김충만 목사
20200812
막 12.35-44

43강: 신애(神愛)와 인애(人愛)

김충만 목사
20200805
막 12.28-34

42강: 부활 논쟁, 중요한 것은 성경적 기준이다.

김충만 목사
20200729
막 12.18-27

41강: 세금 논쟁, 중요한 것은 성경적 기준이다.

김충만 목사
20200722
막 12.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