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3찬양 | 사도행전 2, 7장
설교에 대한 두 반응
성령 안에 모여진 교회를 보라. 말씀이 선포되고, ‘부르시는 자들’(39b)이 모여서, ‘회개하여’(38a), ‘세례를 받고 죄 사함’(38b)을 받고, 이 거룩한 영적 순환이 이루어져 다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세례을 받는(41), 아름다운 교회가 그림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모였지만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교회다. 성령의 향기만이 교회와 온 예루살렘을 아름답게 덮고 있다.
[설교에 대한 두 반응]
① 베드로의 설교(2.14-36) -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2.37a)
② 스데반의 설교(7.1-53) -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7.54)
설교에 대한 사도행전 회중들의 반응을 보라. 둘 다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했다. 그런데 베드로의 청중은 회개하여 성령을 받게 된다. 하지만 스데반의 청중은 설교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설교가 선포되는 곳에는 이처럼 두 마음이 언제나 공존한다.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 두 설교자 모두 저들에게서 발생한 문제 때문에 일어난 반응이 아니다. 설교자에게는 문제가 없다. 베드로는 사도고, 스데반은 평신도 집사여서인가. 그렇지 않다.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이룬 무디(D. L. Moody)는 구두수선공이었고, 그곳에서 은혜를 받아 설교자요 부흥사로 어떤 사람보다 더 위대한 복음의 사람이 되었다.
그럼 무엇인가. 듣는 자의 문제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인, 4 종류의 밭의 비유에서도 말씀인 씨앗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마음의 밭이 길가와 돌과 가시덤불과 같아서 좋은 마음의 밭처럼 열매를 맺지 못했다 하셨다(눅8.1-15).
마음의 밭에서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들
[1] 길 가(12) - 마귀
[2] 바위 위(13) - 시련
[3] 가시떨기(14) - 이생의 염려, 재물, 향락
성령이 임하셔서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복음의 영광도 말씀을 듣고 받는 자가 어떠하냐가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 사도행전 2장에는 그 어떤 습관의 양념이나, 전통의 조미료나, 경험이라는 MSG가 성령이 임하는 일에 첨가되지 않는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고,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 이 순수하고 단순한 복음이 교회가 붙들고 선포하고 증거하는 복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