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예배

베드로후서 맥잡기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0-12-20
성경본문
벧후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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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신약통독개론 | 김충만 목사 (www.thesermon.org)

  

 

 

베드로후서 맥잡기

2 Peter. 1.4

   

    구조 관찰

 

    인사(1.1-2)

    성도들에게 보내는 유언장(1.3-21)

       성도는 누구인가(3-11)

       복음의 권위(12-21)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고(2.1-22)

       심판선언서(1-9)

       심판판결문(10-2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복음(3.1-16)

       바른 신앙(1-2)

       거짓 선생들(3-16)

    송영(3.17-18)

 

 

사도의 유언장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21.18)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1.14b)

 

사도 베드로의 편지를 받은 성도들은 대부분 복음 안에서 믿음에 서 있다(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은 교회 안에는 가짜 복음을 가르치는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다(2.1a). 위기요 위험이다. 때문에 베드로는 이들이 뿌린 가라지와 같은 거짓된 가르침에 교회가 휘둘림 당하지 않기를 소원하고 있다. 누구보다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한 영적인 어린아이들(3.16,18)은 거짓 선생들의 미혹에 넘어갈 수 있어서다. 특별히 종말과 주의 재림에 대해 약간의 혼돈(3.4,9)이 더 그렇게 될 수 있는 염려였기에 두 번째 편지’(3.1)에서도 베드로는 목자의 심정으로 권면한다.

그래서 더 비장한 느낌일까. 그는 자신의 끝이 임박했음을 간파할 만큼 영적으로 깨어있을 뿐만 아니라(1.14b) 그 능력과 힘을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아낌없이 드리고 있다. 이렇듯 사도의 관심사는 주님의 몸됨 교회다. , 교회(성도)의 건강함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다. 이는 교회 밖으로부터의 박해에 대한 메시지인 베드로전서와 비교된다. ‘두 번째 편지’(3.1a)인 베드로후서는 교회 안으로 들어온 거짓 선생들(이단)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흔들림 없이 재림의 소망을 따라 살아가기를 권면한다.

 

 

인사(1.1-2)

성도들에게 보내는 유언장(1.3-21)

 

우리(너희)와 그들(거짓 교사들) 사이에 베드로가 서 있다. 그는 지금 교회 안에 들어온 주의 재림과 관련하여 진리에서 떠난 거짓 교사들(이단)을 염두에 두고서 두 번째 편지’(3.1a)를 쓰고 있다. 따라서 1(베드로후서)의 보이지 않는 배경은 역시 너희(베드로서의 첫 독자들은 핍박을 통해 흩어진 나그네들; 벧전1.1-2 참조)와 거짓 교사들이다. 지금 베드로는 그 사이에 서서 목회자로서 성도들에게 닥친 내적 위기를 직시하고,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베드로서의 독자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이다(1). 그런데 이 믿음은 우리와 첫 독자들이 동일하게받은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럼 이 말은 무슨 뜻인가. 그들, 그러니까 거짓 교사들이 이 믿음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4b)도 아니며, 너희에게는 있으나 그들에게는 신적 성품들(5-7)과 그 열매가 없는 자이기에 옛 죄가 깨끗하게’(9) 되지 않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음으로 말미암아 결국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11)을 얻지 못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 진리의 능력이란 말인가.

따라서 그러므로’(12a). 무슨 말인가. 그러니까 그들의 거짓되고 이단적인 속임수에 물들지 않고 신적 성품들이라는 믿음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유언과도 같은 이어지는 메시지. 그래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생각나게”(12-15) 하며 살 것을 말한다. 둘째로, 그들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16)와 근본적으로 다른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신적 경험으로부터 온 것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을 따를 것을 말한다(17-18). 셋째는, ‘더 확실한’(19a) 것인데 이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바로 기록된 말씀인 예언이다(19-21). 이것이야말로 거짓 선생들의 사사로이’(20) 푼 것에 불과하고, 그러니 사람의 뜻으로’(21) 교묘히 만든 거짓말(속임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고(2)

 

그렇다면 1장의 복음의 능력을 허물려는 자들인 거짓 선생들은 누구인가. 1세기 교회가 만난 위기가 숨 가쁘게 전달된다. 그 중심에 거짓 선지자들’(거짓 선생들, 1a)이 있다.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1b) 이에 베드로는 이들의 거짓되고 방탕한 삶과 하나님의 심판을 거침없이 토해낸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구약의 심판선언서(1-9)와 동일한 심판을 받을 자들이다. 거짓 선생들의 특징과 실상을 설명하는 심판판결문(10-22)은 그들의 정체를 분명하게 그러준다. 그들은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 행하’(10)이성 없는 짐승’(12) 같아서 멸망 받을 무익한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복음(3)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3.8)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3.10a)

 

다시그것도 오시겠다는 주님의 재림보다 먼저 죽는 성도들이 하나 둘 많아지고 있었다. 이때 성도들에게는 이런 의문형 질문이 제기된다: ‘왜 예수님은 아직 다시 오시지 않으시는가?’ 바로 이 부분이 주의 강림을 조롱하는 거짓 선생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가짜 복음(재림)을 전하는 틈새가 되었다: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3.4a)

 

재림은 있다!(3.8-10)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종말을 살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다(11).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며(12), 또한 그의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때에 점이나 흠이 없이 주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13-14). 하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공로가 아닌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있었기 때문이다(15).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18a)야만 무식한 자들이 억지로 푸는 그릇된 가르침에 빠져 멸망에 이르지 않게 된다(16). 사도의 마지막 부탁이 빛난다: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17b)

 

 

부스러기 묵상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3.18a)

 

가짜 복음(재림)을 전하는 거짓 선생들이 문제다.

성도로서 살아가는 삶은 물론이고, 주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까지 흔들 수 있다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다른 복음이 진리 행세를 하는 것은 그만큼 치명적이다는 뜻이 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서 점차 진리는 힘을 잃고 약해지면서 영적 면역력이 급속하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17) 분명 신앙과 교회의 위기다. 결국 영적으로 성장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

사도들로부터, 하늘로부터,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에 집중하라는 유언과도 같은 메시지에 서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1.12-21). 그래서 마지막 권면이 인상적이다: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3.18a) 이것이 거짓 교사들과 가짜 종말론으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을 이기도록 한다.

 

   

2024-03-10 최지원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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