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예배

이사야 맥잡기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0-07-12
성경본문
사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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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2(양무리교회)-성경대학

 

 

 

이사야 맥잡기

 

   심판하시는 하나님(1-39)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1-12)

      이방에 대한 심판(13-27)

      경고와 약속(28-35)

      역 사(36-39, 왕하 18-20): 이사야와 히스기야

   소망이신 하나님(40-66)

      여호와와 우상(40-48)

      오실 메시야(49-57)

      최후 회복과 약속된 영광(58-66)

 

 

이사야 - 5복음서

 

    이사야 유다왕(1.1)

    1-6 웃시야(6.1, 대하26.1-23_52):

       *16_요담(7.1, 대하27.1):

    7-14 아하스(14.28, 대하28.1-27_16):

    15-39 히스기야(36.1, 39.8, 대하29.1- _29):

       #바벨론 포로(유다 멸망)

    40- 회 복(바벨론 이야기)

 

이사야가 있어도 유다는 심판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어찌보면 이것이 사역자의 고민이자 고통이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질타는 이방으로까지 확장된다(1-1213-27). 그리고 바벨론 포로생활(BC 586- )의 예고 앞에 서게 된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날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39:6)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은 빛난다(40-66). 창조 타락 구속의 섭리의 역사가 총체적인 타락에 직면한 유다와 온 인류를 향해 펼쳐지는 것은 순리인지도 모른다. 죄의 혼합물로 가득한 이사야의 현장에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가 울려 퍼진다(7.14, 9.6-7, 11.1-10, 53.1-12, 61.1-3).

이렇게 해서 천년왕국과 새하늘과 새땅이 회복’(1.26)될 저 찬란한 미래를 밝히고 있다(66.7-21). 죄로 타락한 인류는 메시야의 구속사역을 통해 소망의 미래, 저 신천신지(新天新地)로 갈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는 긴장 속에 미래로(未來路)를 따라 변함없이 가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이사야는 제5복음서로 불릴지라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사야(Isaiah)

 

예루살렘에 살던 왕족 출신의 선지자로서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이다. 그는 웃시야가 죽던(6:1) BC 739년경에 예언을 하기 시작하여 BC 701년경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군해 올 때까지 등장한다. 유대인의 탈무드 전승에 따르면 그는 므낫세의 치세 기간에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한다(11.37 참조). 이사야에 대한 이력을 엿볼 수 있는 구절들(7.3, 8.3)에 의하면 그는 왕과 고위층과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그의 아내’(8.3)는 히브리 원문에 의하면 여선지자이며, 두 아들이 있었다(7.3, 8.3).

한편 마가와 동시대 사람으로(1.1, 1.1), 둘 다 유다에서 일했으며, 북왕국 이스라엘 왕국에 전력을 다했던 아모스와 호세아보다는 앞선 사람이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는 4대 왕에 걸쳐서 약 40년간을 설교한다(왕하15-21, 대하26-32장 참조). 그는 앗수르 왕국이 팽창해 가고, 그 결과 이스라엘이 멸망해 가는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속을 예언한다.

그렇다면 이사야가 살던 시대는 어떤 시대였는가? 먼저 웃시아(Uzziah, 대하26.1-23) 왕이 죽자 유다도 쇠퇴기에 들어섰고, 이와 더불어 앗수르가 침략하고 유다는 사회적-종교적으로 순수성을 잃게 된다. 요담(Jotham, 대하27.1-9)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다. 아하스(Ahaz, 왕하16.1-18, 대하28.1-27, 7.1- )는 이스라엘과 수리아가 유다를 침공했을 때 이사야의 권면을 따르지 않고 앗수르 제국에 도움을 요청했는데(7.1- , 왕하16.7- ), 이로 인해 그는 앗수르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는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왕하16.2b), 우상숭배를 권장했고, 성전의 문을 폐쇄했으며, 자기 아들을 제물로 불태웠다. 히스기아(Hezekiah, 왕하18.1-20.21, 대하29.1-32.33)는 탁월한 신앙의 사람이었다. 그는 종교개혁(대하29.3- )을 통해 복구된 성전에서 진정한 예배를 드리도록 재확립시켰으며, 유월절 의식을 웅대한 규모로 재개하였고, 이방의 산당을 제거하였다.

이사야 6장이 왜 1장에 있지 않는지 여러모로 생각해 볼 주제다. 6장이 1장 앞으로 와야 할 것 같다는 얘기다. 어떻든 그는 1-5장의 사역을 맡아 일하던 중에 웃시야 왕의 죽던 해6장에서 비로소 예언자(Prophet)로 부르심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의 어린 시절은 웃시야의 통치 시기였다는 뜻인데 문제는 그 시기가 1-3장에서 밝혀진 것처럼 영적인 면에서 볼 때 극도로 혼란스러운 때였음에 틀림없다.

웃시야(아사랴)는 시작은 좋았으나 말년에는 교만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으며 결국 문둥병으로 죽는다(대하26.1-15 16-23). 그의 뒤를 이는 요담은 하나님 앞에 정직했으나(대하27.2), 문제는 아하스 때다(대하28.1- ). 그는 사마리아와 다메섹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위하여 앗수르와 동맹을 맺음으로써 히스기야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준 꼴이 되었다. 한편 이사야는 히스기야 때까지 선지자로서 40여 년 간 활동한다(1.1, 6.1, 7.1, 36.1).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포로가 되고 나라를 잃고, 유다 역시 내적으로 곪아 터지고 있는 때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입은 자로서 유다의 무대에 등장한다. 이처럼 암울한 시대에 메시야를 예언하는 일에 꾸준히 헌신하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메시야(Messiah)

 

    탄 생 | 7.14, 8.8, 9.6-7

      임마누엘(7.14-16): 그 백성과 함께 고난

      아기(9.1-7): 그 백성을 구속

    사 역 | 11.1-10, 35.5-6, 61.1-3

      싹(11.1-16): 그 백성을 통치

      종(42.1-9, 48.5-6, 50.4-9, 52.13-53.12): 그 백성을 위한 고난

    심판주 | 63.1-6, 66.15-19

 

이사야 53장은 예수님이 성육신(Incarnation)하시기 약 700년 전에 기록되었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놀랍다. 그만큼 이사야가 사역하던 시대에는 메시야의 오심이 절박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희미하게나마 이를 깨닫고 있고 자신 역시 목마르게 메시야의 오심을 앙망하고 있다. 이처럼 53장은 신약 같은 구약이다.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2)15.12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3) 27.30-31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5) 벧전2.24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6) 8.17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7) 8.32-33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8) 4.27-28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9) 벧전2.22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자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11) 5.15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12) 3.25

    “범죄자 중의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12) 27.38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12) 벧전2.24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12) 23.34

 

 

부스러기 묵상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4.16b-17a) 이를 받으사 이사야 611-2절을 읽으셨다. 또한 마태와 요한도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4.14, 8.17, 12.38)고 말하면서 이사야 427, 531,4절을 각각 인용하고 있고, 더욱이 이디오피아 사람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8.30) 빌립이 들었는데 그가 읽고 있는 부분도 이사야 53장이었다(8.32-33). 사도 바울도 역시 로마서 10장에서 이사야가 가로되,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10.16,20)를 시작으로 이사야 531, 651-2절을 각각 인용하고 있다.

이렇듯 이사야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서부터 그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재림에 이르기까지 온전한 복음이 다 들어있음이 놀랍기 그지없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호흡이 끊어질 만큼 겨우’(조금, 1.8-9) 남은 자리에서 저 영광스런 새하늘과 새땅(66.7-21)을 보는 이 놀라운 은총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총에서 비롯되고 있다.

심판 받아 마땅한 자리에 처해 있어도(1-39) 그것을 소망으로 역전시키시는 하나님(40-66)께 영광을 돌린다. 마치 타락한 아담의 이야기를 구속의 이야기로 다시 소생케 하셨듯이 말이다.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었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로 친히 찾아 오시사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다. 이것이 소돔과 방불한 죄악의 잠을 자고 있는 유다의 언덕에 뿌려 놓으신 십자가의 흔적들이다(7.14-15, 8.8, 9.1-2,7, 11.1-2, 35.5-6).

하나님은 죄로 죽어 가는 유다의 가슴에 한 알의 밀알 같은 메시야의 씨앗들을 뿌리셨다. 이 씨앗은 약 700년이 지나서야 싹이 나고 자라 마침내 십자가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의 이 넓고도 깊은 기다림이라는 사랑의 모습 앞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가슴이 타 숯덩이가 되었어도 수 백 번이었을 그 인고의 시간들을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다.

그래서 사랑은 오래 참고”(고전13.4a). 물론 이사야의 사역 기간 동안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BC 722), 이사야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다 역시 그의 예언(39.6)처럼 앗수르의 포로(BC 586)가 되지만 하나님은 이렇듯 허물과 죄로 죽었던”(2.1) 이스라엘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신다.

인간의 타락은 죽음(심판)을 낳지만 하나님은 죽은 나사로를 달리시듯 이미 시체와 방불한 유다를, 아니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살리신다. 할렐루야다! 이렇듯 이사야가 오고 있다. 그의 두 손에는 심판과 소망을 알리는 율법과 복음이 각각 들려있다. 그는 이 두 날개로 유다를 이끌고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해 비상한다. 자칫 이 둘의 균형이 기우뚱거리기라도 하지 않을까 가슴이 뛴다.

이사야가 있어도 이처럼 유다는 전혀 안정감이 없어 보인다. 이사야가 유다의 무대에 등장해서 설교를 시작해도 유다는 별로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북왕국은 일지감지 앗수르에 의해 몰락하였고 유다 역시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형국이다. 이사야가 목회를 해도 유다는 이렇다 할 변화와 성숙이, 그리하여 온 유다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했다는 기록이 없음을 씁쓸하게 되씹어 본다.

 

 

2024-03-10 최지원 전도사

이사야 25장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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