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5수요 | 갈5.1
2021. 9. 1(수)/수요기도회
갈라디아서 맥잡기
인사와 찬양(1.1-5)
1. 바울복음(1.6-24)
2. 복음(福音)이란 무엇인가?(2.1-21)
3. 율법이냐 믿음이냐?_그 증명들1(3.1-29)
4. 율법이냐 믿음이냐?_그 증명들2(4.1-31)
5. 복음행전1(5.1-26)
6. 복음행전2(6.1-17)
인사와 축도(6.18)
갈라디아교회가 해야 할 일은 복음처럼 사는 일이고, 또한 율법처럼 사는 자들로부터 돌아서는 일이다. 이것이 이신칭의(以信稱義)를 따라 복음행전처럼 살아가는 자로 부르심을 입은 갈라디아교회의 삶이자 성도들이 회복해야할 복음이다.
[1장] 바울복음(1.1-24)
1.1. 인사와 찬양(1.1-5)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논쟁이 이미 시작되었다.
1.2. 바울복음(1.6-24)
바울의 사도권과 맞물려 있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으로의 급속한 이동이다(6-10).
[2장] 복음(福音)이란 무엇인가?(2.1-21)
1. 두번째 예루살렘 방문(2.1-10)
바울은 ‘바울복음의 기원이 사람(예루살렘 사도)이 아닌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 두번째 예루살렘 방문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2. 베드로 앞에서 옹호된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복음(11-21)
초대교회는 율법(유대교)과의 관계 설정에, 그러니까 유대교의 그늘에서 벗어나 복음의 능력을 따라 교회를 세워가는 일이 생각만큼 어려운 주제였다.
[3장] 율법이냐 믿음이냐?_그 증명들1(3.1-29)
1. “율법이냐 믿음이냐?”Ⅰ(1-14): 오직 믿음!
율법(律法) vs 믿음의 논쟁(토론)은 기독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주제다. 성령을 체험하게 된 것은 율법을 행함으로가 아니라 들은바 복음의 선포에 의한 믿음에 의해서다(1-5). 바울은 창세기 말씀에서 율법이 아닌 믿음의 우월성을 증명하기를 시작하면서(6)
2. “율법이냐 믿음이냐?”Ⅱ(15-29): 율법은 유한하다.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는 것은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의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율법의 사람이냐 믿음의 사람이냐에 기초한다. 그야말로 유대교(율법)에 정면승부를 거는 [갈라디아대첩]이다(19-25): “그러면 율법은 무엇이냐?”(19a)
[4장] 율법이냐 믿음이냐?_그 증명들2(4.1-31)
1. 신분 이동(1-11): 종 vs 아들
“율법이냐 믿음이냐?”(3-4장)의 문제를 다루는 중 앞 단락(3.26-29)의 연속으로써 ‘종’(A)에서 ‘아들’(B)로의 신분 이동을 갈라디아교회에 적용한다(1-7). 그렇다면 ‘그때에는’(A, 8)에서 ‘이제는’(B, 9a)으로 이미 신분이 변화되었기에 ‘다시’ 유대주의자들의 농간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는 바울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진다(8-11).
2. 간 증(12-20)
바울은 갈라디아교회를 위해 자신이 한 복음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과거’(13-14,15b-16,13a_“내가 처음에”)를 회고하면서 ‘지금’을 돌아보도록 격려한다(15a_“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그리고 필요하다면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19) 할 것을, 그리하여 다시 ‘처음에’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면 ‘이제라도’를 새롭게 각오함을 갈라디아교회 앞에 표한다(20).
3. 이신칭의의 비유(21-31): 하갈 vs 사라
갈라디아교회(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은 모세 율법으로 대표되는 옛언약이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대표되는 새언약(복음)에서 찾기 위해 하갈 vs 사라의 비유를 사용한다.
[5장] 복음행전1(5.1-26)
1. 율법의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1-12)
새언약(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더 이상 옛언약(할례와 모세의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해방)의 복음에서 비롯된다.
2. 자유의 복음(13-26)
율법마저도 사랑의 앵글에서 재해석(13-15)한 바울은 이제 곧바로 새언약을 따라 사는 자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16-26).
[6장] 복음행전2(6.1-18)
1. 그리스도의 법(1-10)
갈라디아교회는 안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섬김을 통해 성취해야 한다(1-10). 그리스도의 법은 ‘너희’(1,2)와 ‘우리’(9,10), 그리고 ‘모든 이’(10)에게 적용되어져야 하고, 전달되어야만 한다.
2. 복음행전2(11-17):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로 오라!
동시에 갈라디아교회는 이제 밖으로 복음의 근본을 위협하는 적대자들(할례주의자들)을 상대해야만 한다(11-17).
부스러기 묵상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6.18)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삶의 초점을 맞추고서 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 위해 섬김의 삶을 살고 있고, 살아야 하고, 살게 될 자들을 향해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빌어 축복한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들인 ‘저희’(할례주의자)는 결코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축복의 반열에 선(든) 자들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