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수요 | 출12.37-42
출애굽(EXODUS), 광야40년사
▪구원 —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수많은 잡족…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37b-38) → 요1.12-13
▪아브라함 언약 →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라.”(40)
▪홍해 건넘 → 세례(고전10.1-2)
▪반석에서 물, 만나 → 성찬(고전10.3-4)
마침내 “430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出애굽한다(41- ). 하지만 모두가 다 바로처럼 어리석지는 않았으며, 하나님은 바로처럼이 아닌 이스라엘처럼 살기를 원하는 자들을 -비록 그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모른다 하지 않으시고 저들의 발걸음을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함께 하는 은총을 허락하신다. 이들이 바로 ‘수많은 잡족’(38, 참조. 레24.10, 민11.4)들이다. 열 번에 걸친 재앙을 통해서 바로(5.2)와는 달리 하나님을 아는 자리에 나아온 것이 얼마나 천만 다행인가.
하나님은 그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당신의 품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용납하신다. 구원은 이스라엘이라는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약에 따른 공동체다(이 점은 43절 이하에서 좀 더 분명해진다). 마침내 430년의 고통은 끝이 난다(40-42). 하나님을 아는 일에 실패한 바로의 몰락이 주는 메시지가 슬픈 가락이 되어 온 애굽에 울려 펴진다. 그것과 함께 하나님의 구원을 맛본 이스라엘의 영광의 찬송이 [출애굽행진곡]이 되어 라암셋에서부터 숙곳까지 이어진다. 참으로 놀라운 대조가 아닐 수 없다.
장자(長子)들의 죽음에 대한 호곡 소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이스라엘은 바로의 칙령에 따라 장자만이 아니라 남자 아이는 다 죽어야 하는 통곡을 경험해 왔다(1.16,22). 얼마나 많은 곡소리가 이스라엘이 사는 고센 땅에 메아리쳤을까. 반대는 애굽은 아들이 태어나는 날이 또 얼마나 축제와 기쁨의 날이었을까. 그러나 바로는 애굽인은 물론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지켜주지는 못한다. 하나님이 거두어 가실 때에 그가 한 일은 통곡하는 것뿐이었다.
바로 그날 밤에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수많은 잡족…이 그들과 함께 ”(37b-38) 出애굽을 한다. 줄잡아 200만을 넘나드는 인구다. 70명의 야곱 가족들은 4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처럼 민족을 이루게 되었다(37-42, 1.1-7). 출애굽 제2년 2월 1일에 각 지파별로 인구를 계수했는데(민1.1-46) 놀랍게도 12지파 모두가 다 생존해 있었고, 뿐만 아니라 모두 다 골고루 지파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섭리다. 저 진저리나는 고통과 고난의 풀무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준비하셨다. 열 번의 재앙을 통해서 세상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인조신(人造神) 바로와의 대결이라는 자존심 상하는 일을 감수하시면서까지 이스라엘의 참 주인이심을 알게 하신 하나님, 그 집요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아는 일에 반기를 든 바로를 응징하신다.
하나님은 애굽이라는 태(胎)에서 이스라엘을 이처럼 거대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그리고 저들의 삶의 무대는 애굽이 아닌 약속의 땅이 되게 하셨다.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마침내 저들을 [광야교회](행7.38)로 부르셔서 당신의 영광을 찬미케 하시려는 원대한 꿈을 시작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