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03] 554수요 | QT의 ABC.1-관찰(눅11.5-8)
김충만, "맛있는 말씀묵상(QT)", p.7.
1.3. QT의 ABC
그렇다고 난 QT 만능론자는 아니다. 영성의 유일한 대안이 QT라는 성경 밖의 생각을 붙들고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말 성령님을 의지하고 겸손히 말씀의 지배를 받기 원한다면 QT가 갖는 생태적 한계들을 하나님께서 극복하도록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기에 QT가 우리의 내면세계의 영적 성장과 실생활의 한 주류(主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QT는 양식이요 에너지이지 그것이 곧 생명은 아니다. 하나님은 QT만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 시대의 영성 생활을 위해 QT를 사용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언제나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관찰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제5복음서’를 집필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려한다.
QT하지 않는 사람이 이런 소리하면 좀 그럴 것 같지만, QT를 하면서 솔직하게 느끼는 부분이기에 QT에 대한 생각이 불필요한 색깔로 분광(分光)되지 만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묵상에도 신학이 있다.”는 말을 즐긴다. 이 말은 묵상을 잘하려면 신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럼 무슨 말인가? 묵상은 신학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성경 66권의 중심 사상과 주제에 대해서 유기적으로 민감하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오늘 중요한 것은 오늘 읽는 말씀이라거나, 한 절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성경 전체의 사상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QT는 잘못된 묵상이다.
묵상은 본문에 대한 관찰(A)과 해석(B)이 적용(C)으로 엮어진다. 이 셋은 서로 독립되어 있으면서 유기적이다. A는 못해도 BC는 잘 할 수 있고, B는 못해도 AC는 잘 할 수 있다. 또 C는 못해도 AB는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A가 건강하면 B를 건강하게 한다. B가 건강하면 C 역시 그 균형을 잃지 않는다. A는 BC를 지향하고, B는 C를 풍성하게 한다. C는 AB에 대한 하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이 셋은 서로 독립적이다.
(계속)